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생각의 실타래를 붙들고 씨름하며, 권태롭게 출렁이는 새벽의
네온사인을 침울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투명한 소주가 하이얀 셔츠를 호젓이 물들여간다.
적막을 더듬어 가며 죽음을 재는 눈은 얼음장보다도 차가운 그 무엇이 있었다. 의식이
다자꾸 흐려지며 그와 동시에 피로와 허기가 연덩어리처럼 내린다.
자리를 잡고 떡하니 서 있는 건물을 등진 채로 통곡하던 그는, 문득 뒤를 돌아보고는
저 높은 지붕을 올려다보며 하늘에 닿기를 꿈꾸었던 걸까? 땅거미가 대지 위를 적셔가듯,
뒤늦은 회한과 자책감 역시 그의 몸을 감싸 안으며 선택을 종용한다. 겨울바람은 수만 개의
칼날이 되어 두터운 그의 옷을 뚫고 온 몸을 후벼 간다. 익숙지 않은 감각이었고 그의 통점은
비명을 질러가며 이 차가운 고문이 끝나기를 기도한다.
한줌의 여유조차 허락지 않은 채 달려온 인생의 끝자락에 홀로 서 있는 지금 이 순간, 반추해보면
남은 것이라고는 남루하고 군데군데 수선한 자국이 여실히 드러난 양복 한 벌과, 한 손에
움켜쥔 소주병이 전부일 따름이다.
던질 때마다 다른 눈이 나오는 주사위와도 같이 그의 인생에서 조그마한 변화만 있었더라도
지금 이 현실에 직면하지는 않았으리라. 촛농이 한 방울씩 떨어져 그 끝이 얼마 남지 않아
힘겹게 심지의 마지막 불씨를 태우는 현재. 그는 과연 누구를 탓해야 하는 것일까. 자신 혹은 가족?
아니면 그를 궁지로 몰아넣었던 모함가들? 그도 아니라면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스스로의
울분을 토해내야만 하는 걸까. 해답은 존재치 않고 원인 역시도 찾기 어려울 뿐이다.
하늘넘어로 아스라이 태양이 떠오른다. 검은색이었던 하늘은 이내 새 생명을 얻은 듯 어느새
퍼런빛이 감돈다. 움켜쥔 소주병을 목을 입안에 털어 놓고 쓰디쓴 알코올을 식도로 내려 보낸다.
이윽고 보도블럭에서 한발씩 앞을 향해 전진한다. 쓰디쓴 알코올이 따끔거렸지만,
오히려 덕분에 살아있음을 실감한다.
어쩌면 그의 인생은 묵직한 주제를 담은 희극이 아니라 지독히도 암울해서
차라리 웃을 수밖에 없는 비극이리라. 이제 그 막이 내리고 새빨간 장막 뒤에서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기다리는 일만이 남았다. 인생이란 공연이 끝난 후 다음 여정까지,
무엇이 그를 제자리로 돌려놓을까.
알 수는 없지만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기다란 공연이 끝난 후 어느 누구도
앵콜요청에 응답할 수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