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우리 집엔 자살한 사람이 많다.
아버지는 내 동생이 태어난 날 자살했고, 어머니는 둘째 누나가 자살하고 난 뒤 얼마 뒤에 자살했다.
결혼한 형이 자살했다는 소식은 방금 전해 들었다.
살아 있는, 아니 살아남은 사람은 나와 큰 누나, 그리고 동생, 이렇게 셋이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자살할지 모르는 일이다.
사실 자살이라는 말 자체는 스스로 죽는다는 것인데,
그것이 앞에 닥칠 때 자신의 손으로 목을 맨다는 뜻이지 그렇게 만든 상황까지 스스로 만들어 낸다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의 죽음의 예가 그런 것이, 누나가 자살한 것은 어머니의 잘못이 아니며 의지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사건은 어머니를 자살로 이끌었다. 유서 따윈 없다.
세상에 죽는 방법은 목을 매다는 방법밖엔 없다는 듯이, 죽은 가족들은 모두 목을 매달았다.
내가 어릴 때 돌아가신, 그래서 얼굴 조차 기억나지 않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내 동생이 태어난 날, 유아원이 끝나고 집에 갔을 때 거실에 매달려 있는 아버지를 내가 처음 목격했다.
얼굴은 빨갛게 부풀어 있고, 지린내가 거실에 진동했다. 그날 내 동생은 태어났고, 아버진 죽었다.
가족의 수는 변하지 않았으나 생활은 그 전보다 몇 배는 힘들어졌고, 어머니의 얼굴을 보기도 쉽지 않았다.
다들 생활에 쪼들려 살아야 했고, 눈가에서 여유란 찾아보기 힘들었다.
둘째 누나가 자살한 이유는 명확치 않다. 남자친구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었으며
집안의 불행에 비관해서라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수긍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그렇다고 해서 다른 이유를 찾아 나설 여력도 없었다. 죽음은 그 자체로 남겨놔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법칙인지는 몰라도 죽음은 연쇄성을 띠고 있어서 어머니까지 그 연장선에 서 있었고,
둘째 누나와 아버지가 목을 매달았던 그 자리에서 흉측한 얼굴로 매달려 있어야 했다.
그것이 끝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죽음은 보이지 않지만, 냄새를 풍기고 있다.
그 칙칙한 냄새가 집 곳곳에 퍼져 있고, 냄새에 힘에 억눌려 집안은 늘 어두웠다.
하지만 우리는 이사를 가지 않았다. 죽는 방법이 목매다는 것밖에 없다고 믿듯이
우리가 사는 곳도 이 집 밖에 없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둘째누나가 죽은 거실에서 나머지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 텔레비전을 봤으며,
형이 결혼하여 분가하자 큰누나와 나, 그리고 동생, 이렇게 셋이서 거실을 차지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거실에 매달려 있던 가족들을 떠올리는 것은 괴롭지만,
사실 그 광경은 머리 속에서 쉽게 떠나지 않는 것이고, 떠났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머리 속 깊은 곳에서 튀어 나왔다.
스크린에서 웃긴 장면이 나와도 크게 웃진 못했는데, 흔들거리는 둘째 누나의 다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둘째 누나는 죽으면서도 텔레비전을 보고 싶었는지, 아니면 조용한 가운데 죽기는 두려웠는지,
텔레비전을 켜 놓은 채로 목을 매달았다.
“나는 연예인들이 좋아.”
둘째 누나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내게 말했었다.
나에게 말하는 것인지 스크린에 대고 말하는 것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는다.
교복도 벗지 않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동공에 힘이 풀린다.
어쩌면 스크린 뒤의 무언가를 보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렇게 학교가 끝나면 누나는 늘 그곳에 앉았고, 그것에서 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텔레비전은 우리 집에서 가장 시끄러운 기계니까 어두운 분위기를 반전시킬 가장 큰 힘을 가진 것 같다.
누나도 그것을 느끼고 자꾸 그 앞으로 끌려가는 것이다.
쪼그려 앉아 교복치마 아래로 드러난 하얀 양말을 붙잡고 앞뒤로 살짝 흔들어가며 텔레비전을 봤는데,
저녁밥을 먹게 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누나는 말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가 누나의 말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스크린에서 나오는 영상들로 누나의 머리 속이 꽉 차 있는 것이다.
저녁밥을 먹을 때도 누나의 눈은 거실에서 움직이는 화면에 고정되어 있다.
“누나는 연예인 중에 누가 제일 좋아?”
내 질문은 궁금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누나의 정신세계를 엿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다 좋아.”
텔레비전이 많은 연예인들을 필요로 하듯이 누나의 머릿속은 그 많은 연예인들이 다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이 능동적으로 움직일수록 누나는 수동적이 되어가고, 나중에는 조종당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둘째 누나는 이미 텔레비전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런 현상이 부정적으로 생각된 것은 아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집안의 운명을 잊거나 벗어날 수 있다면 충분히 긍정적으로 생각할 만한 일인 것이다.
목을 매고 죽는 것 보다는 텔레비전의 노예가 훨씬 낫다.
그래서 둘째 누나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가 자살한 상태였지만, 가족 중 누군가 더 죽는다고 해도 둘째 누나는 아닐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학교를 마치고 들어오면서 봐야 했던 것은 내게 간식을 차려주는 누나가 아니라,
교복을 입은 채로 거실에 매달려 있는 누나였다.
나는 다른 가족이 돌아올 때까지 거실 의자에 앉아 누나가 켜놓은 텔레비전 프로를 봤다.
연예인들이 꽤 많이 나오는 오락프로그램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