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생때 처음으로 어둠의전설 정액제를 신청해봤다.
명절에 받은 용돈을 모아, 형과 함께 부모님의 허락을 받던 그 순간이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내 기억이 맞다면 당시 정액서비스의 가격은 1계정(2케릭)에 39,700원 이었고
그때 물가를 생각하면 (마을버스비가 100원이었음) 지금 십만원은 우습게 넘는 돈이었을거다.
며칠을 고민해 말을꺼낸 형과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부모님의 허락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흔쾌히 떨어졌고.
결코 길지않은 시간이었지만 그 한달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2써클 아이디로 당당하게 마을에 입장한 순간.
피시방이냐는 지인의 물음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집에서 하고있다는 말을 꺼내자..
자신의 일인것마냥 기뻐해주던 지인들, 칸쌍금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한 고마운 사람들.
어릴땐 단순 케릭터를 더 키울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즐겁게 만드는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것을 축하해주고 부러워했던 사람들이 있기에 그만큼 즐거웠던거다.
콘솔게임과는 다르게 타인과 교감하고, 거기서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매력은
온라인게임이 흔치 않았던 그 시절.. 마약과도 같은 중독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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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초성이벤트를 할때도 마찬가지였다.
운영자 이벤트나, 비싼 아이템을 얻을때면 그 [물질적 가치]에 큰 의미를 부여하곤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 상품보다는 수많은 귓말과 축하가 나를 더 즐겁게 만들었던 것 같다.
비록 게임내에서라도 인간관계를 만들고, 쌓아나가는 것이 그토록 즐겁다는걸.
나는 어둠의전설에서 처음 배웠다.
그래서 어둠의전설을 놓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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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유튜브에서 "온라인게임을 쉽게 접지 못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영상을 보았다.
(중년게이머 김실장님의 채널)
게임을 하면할수록 매몰하는것이 많아지고, 쉽게 떠날수 없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것에는 단순 케릭터, 아이템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도 포함된다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댓글을 달고 있었다.
내 추억속 어둠의전설이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은
함께해준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번은 지인이 이런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뤼케시온은 마치 놀이터와 같아서, 따로 약속하지 않아도 누구나 자연스럽게 모이는 장소였다고.
그런데 막상 놀이터가 사라지니, 서로 연락처도 모르고 순식간에 남이 되어버린게 너무 섭섭하다며..
이 말을 듣고 스스로 게임이 정말 즐거웠던 때를 떠올려 보았다.
그 기억속엔 뤼케시온, 호러캐슬에 가면 자연스럽게 마주칠 수 있는 지인들이 있었다.
사소한 장난 하나하나마저 추억이 되는건 그들이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그때처럼 순수하게 어둠의전설을 즐길 수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한번쯤은 그런 감정을.. 다시 이 게임에서 느껴보고 싶다.
더불어 내 추억속 한 페이지를 채워준 사람들에게도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고맙다는 말을 소심하게 적어본다.
이 게임을 불합리하다 느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건 비슷한 이유일지도..
ps
유저들이 이렇게 오래된 게임에 많은것을 바라왔던 이유는
게임의 업데이트로 무언가를 얻기보다는
함께 게임을 즐길 누군가가 더이상 떠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