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의 그때 그 시절들을 게시판에 대신 적어드립니다.
* 익명을 원하신다면 지켜드립니다.
* 이야기는 재미를 위해 (많이) 각색될 수도 있습니다.
* 제보는 편지로 부탁드립니다.
* 그럴일은 없겠지만 여러분의 이야기가 많이 쌓일 시 순차적으로(주관도 조금 섞인) 작성합니다.
* 본 게시글은 신 클라이언트에 맞게 작성 되었습니다.
( 아무도 제보 안해줄까봐 미리 하나 쟁여놈) 예전에 함께 어둠의전설 하던 친구와 술먹다 들은 이야기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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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도가, 헬몽크아머, 편지함>
내가 중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쯤엔 이미 셔스, 칸, 로오,
그리고 CON올려주는 놈? 그 서버가 통합된지 몇 년이 지났었다.
어릴 때 3써클 부터 돈을 내야해서 친구들과 40 캐릭터를 여러개 만들었던 기억이 나서(사실 공부 하기 싫어서)
다들 피시방에서 롤을 켤 때 문득 접속을 해 봤다.
그랬더니 웬걸, 40이었던 캐릭터들이 소위 말하는 '2억캘'이 되어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만렙이란걸 찍은(찍힌?)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묘한 흥분감에 그 날 부터 어둠의전설에 빠져버렸다.
그렇게 몇 친구들에게 어둠의전설의 재미를 전파하며 용사들을 모으고 큐르페이, 자맨 등을 학살하며 지내오다가
키우기 쉽다는 쓰레기 캐릭 힘도가로 '제발 호러캐슬 꼽살좀여'를 외치고 있을 때,
도-전 승에 커다란 칼을 들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에 승급은 커녕 전직 후 지존을 찍기도 힘들었는데 모 길드의 간부라던 그 사람은 흔쾌히 집털의 꼽사리를 끼워줬다.
"진짜 저 가도 되는거에요?"
다들 강하고 멋진 스킬들로 거미와 삽을 들고 설치는 꼬맹이들을 잡는 걸 보며,
눈치가 보인 나는 그 사람에게 슬쩍 귓말을 했다.
그 사람은 대답 대신 내 옆으로 슬쩍 와서는 컨트롤 1을 누르고는 다시 사냥을 했다. 캐릭터는 분명 웃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환골탈태 후 파노멀 도가를 육성, 초간지 늑대인간을 꿈꾸며 그 사람과는 매일 함께 밀레스 여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많은 대화를 나눴고, 많은 것을 공유했다.
알고보니 그 사람은 나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고, 우리 동네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더 친해지고 싶었다)
집이 엄해서, 부모님께 들킬까봐 항상 남자친구와 버스정류장에서 헤어져야 한다며 아쉬워 하는 채팅을 보고
묘한 질투심과, 남자친구가 있지만 이곳에서 만큼은 나와 가장 오래 시간을 보낸다는 묘한 우월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무슨 가방을 메고 다니냐는 질문에 5살 터울의 형이 쓰다 물려준 kamX 크로스백을 말했다.
그걸 듣고난 뒤 그 사람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OO야, 내가 사놓고 안 쓰는 가방이 있는데 이거 줄까?"
라고 말했다.
비록 인터넷 속이지만 매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이 캐릭터 뒤에 있을 사람이 너무도 궁금했고, 심장이 뛰었다.
사실 가방 브랜드가 비싼 거라서 그런 것도 있었다.
"아 저 지금 가방 괜찮은데... 그래도 돼요?"
"응 당연하지! 어차피 안 쓰는 가방인데, 내일 나 야자 안하고 나갈테니까 OO슈퍼 앞에서 7시에 볼까?"
"어, 완전 좋아요!"
이렇게 물 흐르듯 자연스레 약속을 잡고 언제나처럼 떠들었다.
그리고 내일을 위해 슬슬 잠을 자야 할 시간, 나에게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우리 XX이는 예쁜 남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어... 아이돌 같은 남자들이요? 멋있죠, 뭐. 저는 얼굴엔 자신이 없어서 ㅎ.."
"음, 그렇구나. 남자들도 못생긴 여자보다는 예쁜 남자가 더 좋지?"
"네? 어, 뭐 그러려나요. 저는 아직 여자친구도 한 번 못만나봤고, 남자학교라서 그런거 잘 모르겠어요."
"그래? 그렇구나 ㅎㅎ, 알겠어. 우리 내일 7시에 약속한거 잊지 않기야^^"
"어, 네. 내일봐요."
그렇게 엔터키를 치지 않고 '바투'를 입력하며 접속을 종료한 나는 어딘가 이상한 기분에 아침이 되도록 잠에 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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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그거 남자 아니냐?"
6교시가 끝나고 청소시간, 나는 친구의 말에 이리저리 흔들던 빗자루를 놓쳐버렸다.
"야, 진짜 그거 이상하다... 내가 같이 가줄테니까 멀리서 한번 보자."
아닐거야, 아니겠지. 학교가 마친 뒤, 7 이라는 시간이 오기 까지 7일이 걸리는 듯했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친구와 함께 조심스럽게 OO슈퍼가 빼꼼 보일 정도의 거리에 다다랐다.
거기에는 택도 떼지 않은 검은색 가죽가방을 들고, 긴장된 표정으로 휴대폰의 시간을 확인하는,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 15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의 OO남고의 교복을 입은 사람이 서 있었다.
"야, 저 사람 아냐?"
친구의 떨리는 물음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멍하니 그 사람을 쳐다보는데,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그 사람은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쳐다봤다.
나는 숨을 헉 들이키며 친구의 팔을 잡고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내 마음 속에는 혼란, 두려움, 실망, 미안함 등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여러가지 형용사들이 뒤죽박죽이었다.
당황한 친구에게 홀린듯 인사를 하고 집에 들어와 컴퓨터를 켰다.
그 사람이 선물해준 헬몽크아머를 입고 있는 캐릭터를 보고 싶지 않았고
그대로 바탕화면의 어둠의전설 아이콘을 지웠다.
제어판의 프로그램 제거에 들어가서 어둠의전설을 지웠다.
내 휴대폰에 있는 그 사람의 캐릭터와 함께 찍은 사진을 지웠다.
함께 새벽을 말하던 그 기억을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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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시간이 지나자 똥망겜(농담입니다)은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리그오브XXX 라는 신 문물이 내 마음속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몇 번의 시즌이 지나고 대학생이 되었을 때, 과에서 어둠의전설을 하는 친구가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문득 그 때가 생각이 나서 게임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컴퓨터의 전원을 눌러 어둠의 전설을 다운로드했다.
여전히 내 캐릭터는 헬몽크아머를 입고 늠름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화면 구석에서 반짝거리는 아이콘을 발견했다.
아 이거 편지함이던가? 편지함에 마우스를 가져다 대던 나는.
문득 손을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