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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께 보내는 편지 세오
[어둠도서관] PAGE 2
496 2023.05.18. 01:21

여러분들의 그때 그 시절들을 게시판에 대신 적어드립니다.

* 익명을 원하신다면 지켜드립니다.
* 이야기는 재미를 위해 (많이) 각색될 수도 있습니다.
* 제보는 편지로 부탁드립니다.
* 그럴일은 없겠지만 여러분의 이야기가 많이 쌓일 시 순차적으로(주관도 조금 섞인) 작성합니다.
* 본 게시글은 신 클라이언트에 맞게 작성 되었습니다.


2023년 5월 17일 수요일 오후 방쿠와 확성기로 싸우던 모습을 보고 생각난 옛날 이야기라고 합니다.

제보자 익명

--

<비승, 겜창, 예쁨?>

당시 어둠의전설 비승 도가 1위 골때X 라는 사람이 있었던걸로 기억한다.

그 사람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한 무리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되고싶다는 상상을 하곤 했다.

게임속에서도 내성적이었던 나는 차마 말을 걸지 못하고 멀리서 그를 지켜보며 꿈을 키울 뿐이었다.
(성격이 그리 친절한 사람은 아니었던걸로 기억함)

어느때와 같이 호러캐슬에서 장풍-다라 콤보로 몬스터를 천천히 잡고 있었는데 한 직자가 나를 골때X와 비교했다.

"막 10초에 한번 씩 한마리 잡고 그러던데, 다른 도가랑 하니까 참 답답하네요."

처음에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 아무런 대꾸 없이 열심히 두 틱을 모아 다라밀공을 쏘았지만
그는 사냥을 하는 내내 기분을 건드렸다.

"힐이나 똑바로 하셈. 제일 바쁘게 움직여야 되는 직자가 처 떠들기나 하니까 사냥이 느리지"

"1분에 한마리 간신히 잡는 도가 보다는 내가 바쁘긴 함ㅋㅋ"

"100분줘도 한 마리 못잡는 주제에 처 나대노;"

"ㅇㅇㅋ 걍 힘도가 데려왔다 생각하고 사냥함;"

감히 나를 힘도가 따위와 비교하다니 화가 났다.

그렇게 사냥이 끝나고서도 홀에서 한참을 키보를 두들기던 나는 던X앤X이터나 하러 간다는 직자의 말에 자신감이 생겼다.

적어도 당시에 한국에 출시된 온라인 게임 중 내가 하지 않은 것은 없을 정도로 겜창이었던 나는 결투신청을 했다.

그렇게 던X의 결투장에서 시작된 남자의 자존심이 걸린 승부. 적은 비겁하게도 당시 OP였던 레인저 캐릭을 들고왔고
배틀메이지였던 나는 무참하게 두들겨 맞고 온갖 조롱에 유린당했다.

"배메로 레인저를 어케 이김 솔직히; 다른 게임 뜨던가"

그렇게 시작된 타 게임 배틀, 상대도 나 못지 않은 겜창이었는지 둘의 승부는 새벽이 지나도록 계속됐다.

그렇게 피X온라인, X랜드X이서, X레이지X케이드, X트라이더, X앰프드 등
승부를 볼 수 있는 게임이라면 뭐든지 들어가서 실력을 겨뤘다. 그러면서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갔고,
상대방이 남자가 아닌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다하다 이젠 넷카마 짓거리까지? 중증이네 이거."

"010-XXXX-XXXX, 전화해보던가."

소심했던 나는 *23#을 누른 뒤 그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뚜르르- 몇번의 신호가 울린 뒤 받은 수화기 건너편의 목소리는 귀여운 여자의 목소리였다.

나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황급히 전화를 끊었고 그녀는 채팅으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를 남발했다.

"왜 쫄아서 끊어 ㅋㅋㅋㅋㅋㅋㅋㅋ 쫄았냐?"

"뭐라하노."

속에서 들끓던 승부욕이 바닥까지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서로 장난을 치며 어둠의전설로 돌아온 우리.

그 다음 날도 호러캐슬에서 함께 사냥을 하자는 약속을 하고 잠에 들었다.

그렇게 친해진 우리는 매일같이 호러캐슬 사냥을 했고 비승 1위를 꿈꾸던 나는 호러캐슬에,
조금 강해진 그녀는 승급의 세계로 떠났다.

하지만 그녀와의 인연은 계속되어 사냥을 하면서도 귓말을 주고받았고 몇 달의 시간이 흘렀다.

"야 나 다음주 주말에 부산 간다?"

혹시나 나를 보러 온다는 말일까 심장이 두근거렸다.

"왜?"

"왜는, 가족여행 가는데 너 부산 살잖아. 갈만한 곳 추천좀 해줘"

생각나는 거라곤 대지국빱(쓰까무야함), 강알리 등킨드나쓰 따위 밖에 없었기에 허겁지겁 인터넷을 켜 검색을 했다.

"야 그리고 너도 잠깐 볼 수 있으면 보자."

정신없이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에 본 채팅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나는 순진하게도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가족들 몰래 잠깐 나온다던 그녀를 기다리며 온갖 상상을 했다.

100kg가 넘는 사람이 나오면 어떡하지 나 싸움 못하는데,
남자가 나와서 그걸 속냐고 조롱하면 어떡하지 나 싸움 못하는데,
초 절세미인이 나오면 어떡하지 나 싸움 못하는데.

"혹시 XX세요?"

익숙한 목소리에 뒤돌아본 나는 작고 아담하게 평범한 여자아이를 볼 수 있었다.

내가 했던 모든 상상과 단 1%도 맞지 않는 모습이었다. 당황한 나는 바보같은 소리를 내며 말을 더듬었고 그녀는 웃었다.

그렇게 약 30분 정도 인근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눈 뒤 그녀는 가족들이 기다린다며 떠나갔다.

솔직히 무슨 대화를 했는지도 잘 기억이 안난다. 그녀가 떠들다가 나에게 질문을 하면 나는 어, 아니 정도의 대답만.

그리고 주말이 지나 게임에 접속했고 그녀도 접속해 있었다.

"XX야, 그래도 나 접기 전에 너 봐서 다행이야."

"어? 왜? 니 이제 접나?"

"어.. 집에 사정이 있어서."

"아 맞나... 아쉽네.."

"그러게. 그래도 너가 있어서 그동안 참 즐겁게 게임한 것 같애. 고마워."

"ㅋㅋㅋㅋㅋ마지막이라고 울라하노. 됐다 일 잘 해결되면 들어와서 귓말 보내라."

나는 끝까지 쿨한척 신경쓰지 않는척 했고 그녀도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접속을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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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 중 일부 발췌)

근데 솔직히 내 얼굴보고 연 끊으려고 그런거 같음 ㅡㅡ

왜냐? 사실 나 개못생겼거든 ㅠㅠ

그리고 OO아. 나 그때 상처도 많이 받고 니가 싫어할까봐 아무한테도 말은 안했는데.

니 접는다 해놓고 다른캐릭 키우다가 템 옮길때 들어와서 템 옮기는거 다 봤다...

그냥 한켠의 아름다운 추억이라 생각하고 있긴 한데 솔직히 한마디만 할게


니도 예쁜 편은 전혀 아닌거 알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