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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께 보내는 편지 세오
[어둠도서관] PAGE 5
774 2023.05.22. 15:49

여러분들의 그때 그 시절들을 게시판에 대신 적어드립니다.
(제보가 너무 없어 폐관 위기 입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 익명을 원하신다면 지켜드립니다.
* 이야기는 재미를 위해 (많이) 각색될 수도 있습니다.
* 제보는 편지로 부탁드립니다.
* 제가 접속해 있을때는 귓속말이나 직접 말씀하셔도 됩니다.
* 본 게시글은 신 클라이언트에 맞게 작성 되었습니다.



본인 재밌자고 남들 속이고 웃지 맙시다. 나중에 다 본인에게 돌아갑니다.

제보자님 가정에 평화와 행운이 깃들길 기도합니다.

제보자 익명

--

<가난, 이벤트, 사기>

우리 집은 가난하다. 어릴 때 돌아가신 아버지나, 아파서 누워 계신 어머니 등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냥, 가난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동네 피시방의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거기서 운 좋게 얻어온 낡은 컴퓨터 한 대,
이것이 유일한 내 취미이자 내 세상이 되었다.

성능이 좋지 않아서 그 흔한 롤이나 피파 같은 게임도 마음 놓고 즐길 수 없었기에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몇 개 되지 않았다.

그 중에서 돈이 없어도, 조금은 느려도 어떻게든 즐길 수 있는 이 어둠의전설은 나에게 새로운 세상이자 즐거움이었다.

3교대, 후반야 작업을 끝내고 나면 이상하게도 저녁이 올 때 까지 잠이 오질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어둠의전설에 접속해 밀레스 마을을 마음껏 누빈다.

암목이라는 비싼 녀석이 없으면 사람들과 사냥도 가기 힘든 상황에서,
몬스터의 속성을 볼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전-도 캐릭.

나에겐 한줄기 빛과 같았다.

신경험치 스크롤을 살 돈이 없어서 엑스쿠라눔이 10개 모이거나, 미확인 기술서, 흰균이 떠서 스크롤을 살 때 까지,
경험치는 더 오르지 않는단다. 그래도 어빌리티 경험치는 순탄하게 오르니까, 괜찮다.

뭐 그렇다고 지금 내 통장에 천 원, 만 원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이 새로운 세상에 돈을 쓰게 되는 순간,
컴퓨터 밖 세상의 내가 1시간 더, 10분 더 쉬지 못하고 일을 해야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쉽게 선택할 수가 없다.

오늘은 운이 좋게도 꼬리치기 Lev4가 나왔다. 나는 이것을 팔기 위해 자유게시판을 열었고
거기에는 초보도 참여 가능한 이벤트가 있다고 했다.

본인의 캐릭터를 찾을 시 5억을 지급한다는 멋진 이벤트였다.

나는 우편함에 있는 테슬라의 깃털을 사용할까 말까 망설였다. 지금 이걸 열었다가 그를 찾지 못한다면?
그래서 꼭 테슬라의 깃털이 필요할 때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면?

나는 답답함을 조금 참고, 오랜만에 마이소시아의 마을을 걸어다녔다.

밀레스, 피에트, 마인, 아벨, 로톤, 수오미 ...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고 건물에 들어가 그를 찾았지만 그는 없었다.

혹시 시장에 숨어있을까? 시장 1부터 30, 배틀장, 우드랜드, 놀이동산 등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포기하려는 찰나 배틀장에서 누군가가 나를 죽였고 나는 그대로 이아에게 갔다. 그런데 문득 밑 쪽이 궁금했다.

밑으로 내려가자 그 캐릭터가 보였다.

아, 5억이다.

저격 레벨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젠 신 경험치 스크롤을 마음 껏 살 수 있다. 나도 히야트 디그를 껴 봐야지.

교환을 걸었지만 그는 반응이 없었다. 귓말도 해보고 앞에서 외치기도 해보았지만 그는 야속하게 코만 골 뿐이었다.

"님."

갑자기 울분이 차올랐다. 치사하게 도망가거나 잠수 타지 않는다면서. 비겁하게 굴지 않겠다면서.

모니터 너머의 그를 노려보는 내가, 문득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살면서 많은 나쁜 어른들을 만났지 않은가.
당장 밥을 사 먹을 돈이 필요해서 구한 전단지 알바는 전단지를 다 돌리고 가자 나를 쫓아냈고.
편의점의 사장은 최저시급의 반도 안되는 돈을 주며 나를 부려먹었다.

그래서 새로운 세상에서 착실하게 몬스터를 잡고 돈을 벌고, 성장하는 재미가 좋았다.

그런데 이곳도 똑같았구나. 현실이 무서워서 도망친 이곳도, 그런 어른이 존재하는구나.

나는 짐짓 쿨한척 그에게

"님 다음에는 여기말고 죽마 같은데 숨어보셈 더 찾기 어려울듯."

라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님 여자임 남자임? 혹시 욕 잘함?"

라고 말을 했고 나는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역함을 안간힘을 다해 참았다.

그럼 그렇지. 내 인생에 이렇게 좋은 기회가 올 리가 없지.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행운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온다던가.
평생을 그냥 가난하게만 살았던 나이기에, 기회를 준비할 기회조차 없었던 것 같다.

겨우 게임일 뿐인데, 그 겨우 게임일 뿐인 곳에서 위안을 받고 싶었을 뿐인데.



이제는 밤과 새벽에 일을 해도 땀이 나는 계절이 왔지만,
나에게 이 세상은 여전히 너무나도 차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