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오력 306년-
아는 동생이 어둠이 망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접속했다길래 한동안 어이가 없었다.
그동안 어둠이 망한다는 말이 한두 번 있었는 줄 알아? 나는 동생을 지탄했다.
하지만 그것이 농담이 아닌 사실임이 드러났음에도 도저히 와 닿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게임은 잘 돌아간다.
길드의 분위기도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실없는 소리"로 채워지는 채팅창을 보며
그래도 어둠이 망할 리는 없을 것이다.. 모두가 암묵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곧 나아질 거란 대화를 주고 받았지만, 그 속내까지 어떤지는 알 수 없는 법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지인이 게임에 다녀간 걸 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안타까움을 한가득 담고 있는 눈으로 게임을 바라보고는 내게 말을 걸었다.
어둠의전설 나아지겠죠 나중에 또 부활할 수 있겠죠 항상 들어왔던 상투적인 말들.
이 게임을 미워할 순 있어도 그리움까지 지울 수는 없나 보다.
어둠의전설아 빨리 일어나라.
생기를 잃은 게임의 모습을 보는 기간이 길어지자 내 마음은 점점 조급해졌다
이렇게 오래된 게임이 다시 나아질 수 없다는 걸 알지만..
텅 빈 마을의 모습을 보는건 이상하리만치 가슴이 답답했다.
항상 게임을 지켜온 사람들이 있었기에 더 현실감 없는 광경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금방이라도 밀레스 리콜존은 사람으로 가득 찰 것만 같은데..
오늘 밤도 길드원들은 착잡한 마음에 차마 접속종료를 누르지 못하고 제각기 자신의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 후 오랜 시간이 흘렀다.
점점 게임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걸음마저 뜸해졌다. 항상 접속해 있었던 길드원들도 오늘은 보이질 않는다.
착잡한 마음을 뒤로한 채 나도 게임을 종료하고 누워본다. 어느새 잠에 빠져든다.
어둠 속을 걷고 있었다.
밀레스 마을의 구석에 유저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시나요.
"어둠의 전설이 망해가는 게 아쉬워요.. 진짜 잘 만든 게임이라 더 인기를 끌 수 있었을 텐데.."
이제와서 인기?
발걸음을 옮긴 곳에는 길드원들이 보였다.
"형 왔어? 게임이 이렇게 된 건 참 안됐어.. 근데 솔직히 편해진 것 같다. 그동안 랭킹을 유지하는게 벅찼거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어둠이 살아나길 바라는 마음은 변함없어. 그냥 그렇다고.."
한소리를 해주려 하던 찰나 장면이 바뀌어 버린다.
운영자들이 보인다.
"아 오셨어요? 오래된 게임이니까 어쩔 수 없죠. 수익이 줄어 든건 아쉽지만.."
"그만큼 관리하기도 편해졌고요. 이제 골치 아픈 일도 없을테니.. 후련하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래도 이 게임을 오랜 기간 맡아온 운영자들이 아닌가.
간신히 배신감을 참으며 고개를 돌린 곳에는 유튜버들이 있었다.
다짜고짜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지금 모습이 참 아쉽죠? 운영자들에게 한 마디 부탁합니다."
"아 후원 감사합니다. 우리가 어둠 살려야죠!"
질문 세례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고개를 돌리자 그들은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자극적인 단어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바쁘다.
어둠의전설.. 동접 마지노선 200 붕괴.. 이대로 괜찮은가?
언제나 게임을 내버려 두질 않는다.
그들의 눈에는 게임이 더 발전하지 못해서 아쉽고, 랭커를 더 쉽게 유지할 수 있어서 다행인거고
오히려 수명을 다 하니 후련하고, 한 번의 어그로와 가십거리로밖에 안 보이는 건가.
다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냥 순수하게 게임이 더 나아지길 바랄 수는 없는 거야?
나는 악몽에서 깼다.
너무 직설적인 꿈이었기에 그저 악몽에 불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의 상상에만 기초한 꿈이길.. 이 게임의 마지막을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길..
하지만 현실은 너무 매정해서. 사실 내 가슴속 깊은 곳에 감춰둔 본심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 위선자 녀석.
-세오 306년 4월 21일 6시-
1일 3시간 만에 어둠으로.
시장 은행의 길레노아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고,
이 시간에도 사냥터엔 몬스터들이 끊임없이 젠 되고 있다.
우리는 모든 퀘스트를 도전할 수 있고, 언제든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다.
달라진 건 없다.
게임은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데 우리는 그 게임 때문에 감정을 소모하고 있다.
너를 보는 옳지 못한 각자의 "관점"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