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게임실행 및 홈페이지 이용을 위해 로그인 해주세요.

시인들께 보내는 편지 세오
[JJ] 카산드라(2)
350 2024.07.27. 02:35


이것은 미래에 일어날 일일까?


밀레스 리콜존이 보였다. 눈이 내리는 밀레스는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의아하게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들 뜬 모습이라기 보단, 모두가 차분해 보였다.

무슨 일인지 파악이 되지 않아 혼란을 겪고 있을 때, 운영자 세토아가 걸어 나왔다.

머리 위로 떠오르는 물음표의 개수가 기하 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많은 어둠 팬 여러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어둠의전설은 올해를 끝으로 서비스 종료를 하게 됩니다."



물음표가 순간 느낌표로 변해 폭발했다.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지켜보는 내가 패닉에 휩싸여 있거나 말거나

밀레스 구석에 앉아있는 또 다른 나의 표정에는 미동조차 없었다.



운영자의 말이 끝나고 모니터에는 어둠의전설의 역사에 관련된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급하게 준비한 듯, 눈 뜨고 못 봐줄 퀄리티의 영상이라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애썼다.

어둠의전설이 사라진다고?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지?

하지만 여러모로 생각해봐도 운영자의 말은 서비스 종료 외에는 해석할 여지가 없었다.



영상이 끝난 후 이어진 넥슨 대표 이사의 인터뷰가 그 해석에 쐐기를 박았다.



"어둠의전설은 넥슨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게임입니다. 하지만 게임의 수명이 다하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 일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어둠의전설, 그리고 저희 넥슨을 사랑해주신 유저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앞으로도 저희 넥슨은 또 다른 게임으로 인사드릴 예정이니 많이 응원해주시고.."



혼란으로 가득한 밀레스의 목소리가 멎음과 함께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깬 후에도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해, 뿌연 시야로 천장만 쳐다보고 있었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방금 전까지 꾼 꿈이 예지몽이라는 사실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었다.

인정하기 싫었던 나머지 내 예지능력이 이제야 사라졌구나 하는 망상까지 했다.



"어둠의전설이 사라진다고?"



나는 머리맡을 더듬어 안경을 썼다. 어둠의전설이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는 것도 확인했다.

잘 나가는 게임은 아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다른 게임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지만, 어둠의전설이 사라진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대체 왜?


몇분정도 이유에 대해 생각하다가 그럴 시간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꿈속에서 밀레스는 눈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즉, 겨울에 이 발표가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벌써 가을.. 어떻게 이때까지도 서비스 종료에 대해 들은 것이 없을 수가 있을까.

아니, 이런 생각을 할게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그것은 훨씬 더 막막한 문제였다. 일단 길드원들에게 공유해야 할까.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겠지.

어떻게 말을 해야할까. 무턱대고 어둠의전설이 사라진다고 말하면 정보의 출처를 물을테고

꿈이라고 말할수도 없잖아.


내가 여태까지 예언한 것도 없는데, 대체 예지몽 같은걸 누가 믿는다는 거야.

아니, 그것보다도 지금 정보의 출처 같은거에 연연할 때가 아니잖아. 중요한 건 어쨌든 어둠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그걸 막는 방법을 생각하는 거라고. 모든 유저들이 뭉쳐서 항의라도 해야 하는거 아닌가.


문제는 돌고 돌았다.

그러니까 항의를 하려면 유저들에게 어둠의전설이 사라진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사람들은 그게 뭔 소리냐고 물을 테고, 그럼 내가 말한 서비스 종료를 증명해야 하는데..

그걸 증명할 수 있는방법이 없다.



머리가 지끈거려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2024년에 예지몽이라니..

어쨌든 말해두면 나중에 진실은 밝혀지게 되어있다.

딱히 답을 내리지 못한 상태로 나는 결국 아침을 맞았다.





며칠을 더 고민한 끝에, 나는 결국 누군가에게는 이 능력에 대해 말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더 이상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이제 곧 겨울이 온다.



"부길마 형"



나는 최대한 진지한 표정으로 부길마 형을 불러다 앞에 앉혔다. 부길마 형은 나이도 많고 제일 친한 길드원이기도 했다.

막상 사람을 앞에 앉혀 놓으니, 말을 딱히 못하는 편도 아니건만. 그렇게 막막할 수가 없었다.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믿어줘"
"무슨 일인데?"
"어둠의전설 곧 서비스 종료할거야."
"뭐? 뭔 소리야?"
"못 믿겠는거 잘 알지만 제발 믿어줘 형. 어둠의전설 곧 끝나. 올해가 가기도전에 사라질 거라고."


어떻게든 예지몽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서 형을 납득시켜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너 뭐 잘못 먹었냐.."
"아니라고! 왜 내말을 못믿냐고!"


나는 분명 진실을 손에 쥐고 있건만, 길드 내에서 가장 친하다는 형조차도 설득하기 어려운 현실에 울컥한 나머지

결국 애먼 사람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그러나 버럭댄 것이 의외로 효과가 있었는지 곧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래. 내가 낚여준다. 어둠의 서비스 종료가 사실이라고 치자.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뭔데?"
"사람들에게 말해볼 수라도.."
"다른 게임에서 서비스 종료가 철회된거 본 적 있어?"
"....."
"만약 종료가 결정난 상태라면, 이미 내부에서는 준비가 끝난 상황일 거 같은데, 우리 힘으로 뭘 할수 있는데?"
"....."


그렇게 막말을 한 후 형은 입을 다물었다. 나보다도 표정이 더 심각해진 지 오래였다.


바꿀 수가 없다고?
모든 걸 알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바꿀 수가 없다고?


어느새 꾹 쥐여진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는 카산드라가 그리도 무력했던 이유를 그제야 이해했다.

그녀는 말 그대로 무력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예지 능력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결정적으로 군사를 좌지우지 할 힘이 없었다. 만약 아폴론이 설득력을 앗아가지 않았다면..

예지 능력은 그녀에게 그런 힘을 줄 수 있었을까?


하물며 지금은 신화의 시대가 아닌 과학의 시대다. 따라서 나에게 설득력 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모든 걸 알고 있어도, 힘 없는 일개 유저라는 사실또한 변하지 않는다.



"형, 못들은걸로 해."
"뭐?"
"내가 뭘 잘 못 먹었어."



돌아서는 내 등뒤로 무슨 말이 들렸지만 나는 무시하고 접속을 종료했다.

무작정 방문부터 잠그고 보니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몸과 마음이 격리되자 힘이 쭉 빠져 그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형의 말이 맞았다. 우리 게이머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가장 근본적인 사실을 나는 잊고 있었다.



무력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나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게임의 마지막을 막지 못하는 것으로도 이렇게 괴로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그저 지켜만 봐야했던 카산드라의 심정은 얼마나 괴로웠을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나으리라, 라고 그녀는 생각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