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녀가 살고 있던 원룸에서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호성은 이삿짐센터를 부르는 것이 아깝다고 판단하여 본인이 직접 김선녀와 이삿짐을 옮기며 자신의 보금자리에 김선녀를 하나의 옵션처럼 욱여넣기 시작했다.
해가 지면 어둑해지는 저녁은 더 이상 호성에게 외로움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호성이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돌아오면 선녀는 호성이 가장 좋아하는 알리오올리오 파스타를 만들어 놓고, 씻지도 못한 호성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하며 호성을 바라본다.
"맛있다"고 이야기해주면 꺄르르 웃으며 행복해하는 선녀는 호성에게 전부였다.
결혼식을 치르지는 않았지만, 이제 식구가 둘이니 호성은 아르바이트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선녀에게 맞벌이를 이야기하자니, 선녀가 직장에 들어가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싫고, 그저 집에서 자신만을 위해 기다려주기를 바랐다.
그렇게 호성은 2교대 공장 일에 뛰어들었고, 하루 12시간을 미친 듯이 일했다.
일이 끝나면 저녁에는 배달 대행까지 겸하며 돈을 벌었다.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늦게 집에 돌아오면 술상을 차려 놓고 호성을 기다리는 선녀의 모습을 보며, 그가 겪은 피로는 술 한 잔에 씻겨 내려갔다.
어느 날이었다.
호성의 세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한 여름날에 벌어졌다.
공장 일이 끝난 후, 그날은 몸이 좋지 않아 배달 대행을 하루 쉬고 집에 들어갔을 때였다.
늘 있어야 할 자리에 선녀가 없었다.
전화를 해봤지만 받지 않고, 아무 소식도 없었다.
'납치라도 된 걸까?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난생 처음 겪는 기다림과 불안감에 호성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선녀가 들어왔다.
선녀는 들어오자마자 호성의 얼굴을 보고 흠칫 놀라며, 반가움보다는 놀라움으로 호성에게 말했다.
"자기 뭐야? 오늘 일, 아니 일 그만둔 거야?"
불길한 느낌이 들어 호성은 선녀에게 어디 다녀왔느냐고 물었다.
선녀는 그저 산책을 하고 왔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호성은 알 수 있었다.
선녀가 풀 메이크업을 하고, 미니 스커트를 입고 가슴골이 파인 옷을 입고 산책을 하진 않았을 거라는 것을.
찝찝한 마음이 컸지만, 그렇다고 선녀를 다그칠 수는 없었다.
시간이 한참 흘러 선녀와 잠자리에 든 호성은, 선녀가 코를 골 때까지 잠이 들지 않았다.
색색거리며 선녀의 안정적인 호흡을 듣자마자 호성은 그녀의 휴대폰을 열었다.
문자 내역이나 전화 내역에는 별다른 특이점이 없었다.
그때까지만 보고 휴대폰을 닫을 걸, 호성은 훗날 한탄했다.
타임라인으로 선녀의 이동 기록을 본 호성은, 그날 세상이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