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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께 보내는 편지 세오
파경지탄 7편
382 2025.03.30. 20:54

자고 일어난 호성은 미칠 듯이 몰려오는 숙취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숙연한 표정으로 콩나물국을 끓여 놓고 죄인처럼 앉아 있는 선녀를 보니, 어제 중년 남성과의 통화를 말리던 선녀에게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하며 잠이 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콩나물국이네."

"응, 먹어."

일어나자마자 나누는 무미건조한 대화 이후, 호성은 아무 말 없이 밥을 먹었고 옷을 주워 입은 뒤 출근을 하려 한다.
옷을 가져다주는 선녀가 호성에게 말했다.

"이제 안 그럴게. 잘 다녀와."

평소라면 선녀를 꼭 안아주며 다녀온다고 체온을 느끼곤 했지만, 오늘은 어색한 이질감에 호성은 고개만 끄덕이고 출근을 했다.

.

같은 작업이 반복되는 생산직 라인에서 호성은 기계처럼 몸을 움직이며 머릿속에 수많은 잡념을 떠올린다.
분명 몸은 움직이고 있었지만, 뇌는 다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점심을 먹고 쉬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호성은 선녀의 SNS를 들어가 본다.
그리고 친구 목록을 훑어 보던 중, 호성이 알지 못하는 백봉기(가명)라는 친구가 눈에 띈다.

백봉기의 SNS를 타고 들어가 보니, 중년의 남성과 중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 그리고 단아하게 생긴 중년의 여성이 함께 찍은 가족여행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있었다.

그 외에도 가족사진이 끔찍이도 올라와 있는 남성을 보며, 호성은 혹시 이 백봉기가 어제 전화 통화를 했던 그 사람일까 싶어 사진을 캡처한다.

그리고 선녀에게 메시지로 물어본다.

선녀는 바로 답장을 보내지 않았지만,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답장이 온다.

"어, 맞아. 왜?"

머리가 지끈거린다.
선녀도 이 백봉기가 가족과 이렇게 끈끈하다는 걸 알 텐데, 그럼 그걸 알면서도 그저 노리개로 스스로 전락해 그와 불륜을 저지른 걸까?

아물어 가던 상처는 다시 고름이 새어나오며 쓰라려오기 시작한다.

차라리 노총각이었다면 이런 감정이 들지 않았을 텐데, 백봉기는 너무나도 정상적인 가정, 아니 그 이상의 멋진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