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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께 보내는 편지 세오
무지개 실타래.
329 2025.05.29. 13:21


이제 막 11레벨 2차 전사로 전직한 '용호'는 남다른 포부를 품고 밀레스 마을에 당도했다.
초라한 노비스 마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화려하고 분주한 밀레스의 분위기는 용호의 가슴 깊은 무언가를 일깨우며, 마치 그가 진정한 모험가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그러나, ‘그것’을 줍기 전까지는 말이다.



#무지개 실타래

"이게 뭐지?"
처음 보는 아이템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고, 바닥엔 온갖 드랍 아이템이 널려 있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집지 않았다.

그 정체불명의 아이템은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실타래처럼 생겼고, 마우스를 가져다 대어도 이름조차 뜨지 않았다.
버그라고 치부하기엔 지나치게 신비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용호는 호기심에 실타래를 더블클릭했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이것은 단순한 아이템이 아니다."




#워프
클릭하는 순간, 11레벨의 용호는 순식간에 41레벨 3써클 전사가 되었고, 눈앞에는 번쩍이는 능력치 포인트 창이 떠올랐다.

"엥? 갑자기?"

놀란 마음에 다시 실타래를 클릭하자, 이번엔 71레벨.
또다시 클릭하자, 99레벨 5차 전사가 되어버렸다.

'복귀 유저 이벤트인가? 내가 놓친 시스템이 생긴 건가?'

의문을 품은 용호는 채팅으로 주변 유저들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님"

"네"

"혹시 그 무지개색 실타래 아이템같은거 누르면 레벨 워프되는 그런게 생겼나요?"

"?"

"아니 그러니까 굳이 사냥터 가서 사냥 안해도 성장되는 패스? 이벤트 같은게 어둠에 생겼냐구요"

"아뇨;;"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의문 부호뿐이었다.
아무도 실타래의 정체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그 순간, 용호는 확신했다.

‘이건 나만이 겪는, 기적 같은 버그다.’





#성장
레벨만 올라간 상태에서 스킬은 비워져 있었다.
용호는 마치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사람의 심리처럼,
성장한 상태에 대한 작은 불만을 품게 된다.

그는 스킬을 하나하나 배우기 시작했다.

매드소울, 크래셔…
모든 스킬을 100/100으로 완성한 뒤, 실타래를 다시 클릭했다.

그리고 그 순간, 승급 상태로 워프된다.
언제 어떤 퀘스트를 클리어했는지도 모르지만, 어느새 그는 승급 캐릭터였다.

하지만 승급 직후엔 제대로 된 사냥도 불가능하니,
'좀 더 올려볼까?' 하는 마음에 실타래를 계속 클릭했다.
그렇게 용호는 3차 승급 요건을 순식간에 충족하게 된다.





#3차
문제는, 레벨이 올라가도 승급 퀘스트는 직접 수행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용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충분한 현질과, 선량한 유저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퀘스트를 수행했고,
마침내 '나이트'라는 칭호와 함께 나겔링 마을에 입성하게 된다.

그리고 또다시, 필요한 장비 퀘스트까지 클리어하며
정식 3차 승급 캐릭터를 완성해낸다.





#나겔 사냥
PM 19:00 ~ 21:00
나겔 정규 사냥 팀에 합류한 용호.
화려한 이펙트에 압도당해 이펙트를 꺼보기도 했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컨트롤이었다.
고작 며칠 만에 3차가 되었지만,
그의 조작 실력은 여전히 2차 초보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팀원들의 지적이 이어졌고, 용호의 정신도 점점 피폐해져 갔다.
'어차피 실타래 누르면 되는데, 왜 사냥을 하지?'





#무력의 정점
사냥을 마친 용호는 다시 실타래를 연신 클릭하며
체력 600, 마력 300, 어빌리티 270까지 끌어올린다.

그리고 무지개 실타래는 더 이상 클릭되지 않았다.
아이템 창에서도 사라져 있었다.

그러나 용호는 괜찮았다.
이미 그는 절정의 수치와, 상대적 우월감에 도취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튜닝의 끝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부족한 컨트롤 실력에 사냥팀과 길드 대전에서 외면받았고,
결국 용호는 지쳐버렸다.

자신의 캐릭터를 거래 사이트에 올린 용호.
하지만 업로드하자마자 계정은 정지당했고,
운영진으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불법 프로그램 사용으로 인한 영구정지”

억울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실타래를 얻고 폭주기관차처럼 달려온 자신에게
브레이크를 걸어준 운영진에게 감사한 마음마저 들었다.





#다시 시작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더니, 정말 그 말이 명언이었다."
그는 새 계정을 만들었다.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며 지은 아이디는,
‘뉴스타트용호’





#마무리
시간이 흘러, 뉴스타트용호는 어둠의 세계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모르는 유저가 없을 만큼 입담 좋고 눈에 띄는 존재.
하지만 그 명성의 색깔은 조금 달랐다.


뉴스타트용호: 개망겜ㅋ 사냥 해서 3차 언제감? 3차해서 600/300은 어케 찍음?ㅋ


그는 ‘망무새’로 다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