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이 날 억까해서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오늘도 여전히 친구들과의 기분 좋은 술자리에서 푸념을 늘어놓는 이 친구는 강춘삼(가명).
그는 어린 시절부터 우리와 친구였지만, 항상 세상의 모든 불만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피곤한 친구였다.
다른 친구의 약혼을 축하하자는 명분으로 오랜만에 다들 시간을 내서 모였건만,
그는 짧은 축하 인사를 끝으로 정치, 법, 온갖 불만을 토로하며, 그 더러운 감정을 우리에게 배출했다.
“야야. 오늘은 기분 좋은 자리잖아. 그만 좀 해라.”
보다 못한 친구가 말을 건네자, 춘삼은 오히려 눈을 부라리며 쏘아붙였다.
“넌 친구가 돼서 힘든 내 사정을 몰라주는 거냐?”
자칫 주먹다짐으로 번질 수도 있는 상황에 다들 거들어 상황을 일단락하긴 했지만,
기분이 나쁘다며 자리를 박차고 먼저 가버린 건 춘삼이었다.
그가 떠난 후, 남은 친구들은 저마다 춘삼에 대한 불만을 하나둘씩 술안주 삼아 꺼내기 시작했다.
“저 자식은 진짜 이해가 안 돼. 자기가 음주운전해서 걸려놓고 나라 법을 논하고 있다니까?”
“맞아, 맞아. 나한테 급하다고 100 꿔 가놓고 아직도 안 갚아. 야.”
“야, 너도? 저 자식 나한테도 돈 빌렸어.”
다들 춘삼을 욕했지만, 어쩐 일인지 나는 춘삼이 안타까웠다.
정이라도 남은 걸까? 친구들에게 급한 일이 생겼다 말하고 자리를 나왔다.
그리고 춘삼에게 문자를 보냈다.
[힘들지? 난 너 이해한다. 친구야, 마음 괜찮아지면 언제 소주 한 잔 하자.]
마치 착한 아이 증후군이라도 걸린 듯, 춘삼에게 문자를 보내고 그를 걱정했다.
그리고 문자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춘삼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야, 넌 내 마음 이해하지? 나 이제 그 자식들 안 봐. 유일한 친구는 너 하나다.”
“아이고, 뭘 또 그렇게까지. 여튼 잘 들어가라, 춘삼아.”
“야 타임아. 우리끼리 한잔할래? 죽이는 포차 있는데.”
“그래? 그러지 뭐. 어디로 가냐?”
“문자로 주소 넣어줄게.”
그렇게 춘삼이 알려준 허름하지만 감성 있는 포차로 향해 그를 만났다.
소주에 홍합탕을 시켜 한 잔, 두 잔 걸치며 나는 춘삼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대통령이 어쩌고… 법이 어쩌고… 세상이 어쩌고…”
들어주고, 공감하려 노력하고, 이해해보려 애쓰며 춘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도 이야기를 많이 해서 목이 아픈지, 잠시 정적이 흘렀을 때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야 춘삼아, 나 얼마 전에 진짜 힘든 일이 있었…”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춘삼은 말을 끊었다.
“야야, 힘들면 소주 한 잔 먹고 푸는 거지. 남자가 말이야.”
그는 내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고, 잔을 들어 올리며 또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야 있잖냐, !@#$%!@#$%”
그래. 들어주는 자리라고 생각하고 온 거니까 그렇게 해보자고 다짐했다.
1000마디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내 마음 이야기 한마디쯤은 할 수 있겠지.
물론 내 생각은 빗나갔다.
그의 말이 몇 시간 반복되고, 푸념이 끝날 즈음 나는 한 번 더 내 고민을 꺼내보려 시도했지만,
마치 골키퍼의 손에 걸린 축구공처럼 내 말은 춘삼이라는 골대에 들어가지 못하고 튕겨 나왔다.
시계를 한 번 보던 춘삼은 말했다.
“야야, 늦었다. 이제 일어나자, 타임아.”
“어어, 그래…”
그리고 춘삼은 계산하지 않았다.
자신이 돈 쓸 데가 많다며, 계산은 내가 해줘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야 타임아, 나 요새 좀 벌이가 시원찮다? 좀 사주라, 친구야.”
술값을 지불하고 포차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한 대 피우고자 불을 붙인다.
춘삼은 옆에서 자연스럽게 내 담배곽에 있던 마지막 한 대를 꺼내 입에 물고는 말했다.
“야 타임아, 그리고 진짜 미안한데, 나 100만 꿔주면 안 되냐?”
“…어, 춘삼아. 계좌 불러봐.”
어플로 지문만 갖다 대면 이체되는 편리한 세상 속에서,
어찌하여 춘삼이 넌 이렇게 한결같을까.
100을 이체하고, 나는 말한다.
“춘삼아, 우리 인연 오래됐지? 이 100은 갚지 마. 그냥 잘 살아라.”
“뭐? 갑자기 왜 그러냐?”
어안이 벙벙한 춘삼을 뒤로하고 걷고 또 걷는다.
오랜 벗을 잃었다는 생각, 오랜 벗을 바꾸지 못했다는 생각.
무슨 감정인지 모를 그런 감정에 휩싸여 정리되지 않는 머리를 식히고자 담배곽을 열었는데,
담배도 다 떨어졌다.
맞다. 그 자식이 마지막 담배를 폈지.
역시, 변하지 않는 불변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사.고.쓰.아
사람은 고쳐서 쓰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