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보통 일면식은 없지만 근황이 궁금한 유저에게 편지를 보내곤 한다.
물론 답이 오는 건 극히 드물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얼마 전,
팬소설에 멋진 글을 써내리다 갑자기 사라진 한 유저에게서 답을 받았다.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그는 하루 종일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묘한 글을 많이 쓰던 사람이었는데
그 매력에 취해 그의 글에 반했다가 팬소설 페이지가 사라지는 바람에
더 이상 그의 글을 읽을 수 없게 되어버린, 그런 아쉬운 유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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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내가 물은 건 세 가지였다.
하나.
“글을 정말 잘 읽었다. 근데 그런 생각은 보통 하시는 거냐, 아니면 영감을 받는 거냐”
라는 물음에
“대중없이 그때그때 자기 필에 취해서 글을 쓴다”라고 답했다.
둘.
“시인에 왜 도전 안 하셨냐”
라는 물음에
“시인이 되려고 글을 쓴 게 아니라 글을 쓰고 싶기에 쓴 거다.
작품은 결코 자리에 쫓겨 억지로 만드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셋.
“어둠은 접으신 거냐, 글은 다시 쓰실 거냐”
라는 물음에
“접었고 다시 글을 쓸까 생각했지만,
이번 시인 선발 때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는 게 부담스럽고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아서 글을 안 쓸 거다.”라고 답했다.
사실 그의 글을 계속 읽고 싶은 나의 욕심은
그가 다시 활동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역시나 타인의 의견보다는 본인의 의지가 확고한 사람이라는 걸 다시 깨닫고
그런 그에게 마지막 배웅을 건네는 편지로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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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날.
만 보 정도를 걸으며 유심히 생각했다.
난 왜 글을 쓰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나 역시 글 쓰는 게 그냥 재밌어서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 스스로 “일주일에 한 번씩은 글 업로드!”라는 규칙을 만들었다.
투두리스트를 만들어 글 쓰는 걸
이젠 하나의 일로 만들어버린 내 자신을 보니
뭔가 즐기지 못하는 괴물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내심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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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어릴 적
스타크래프트를 필두로 한 대회가 TV에 많이 방영됐다.
친구 중 한 명은 학교를 일찍 자퇴하고 프로게이머가 될 거라며 매일 게임만 했다.
어느 날 궁금해서 “재밌냐?”라고 물으니
“엿 같지 뭐.”라는 답이 돌아왔다.
잠깐 하는 게임은 달콤하고 행복하지만
일이 되어버린 게임은 노역에 불과하다고 내심 한탄하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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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전설을 꽤 오래 했다.
지금도 간혹 들어가서 공짜 라르를 녹이고 보상을 받거나 마을을 돌아다닌다.
나도 어둠을 즐기던 시절이 있었다.
속셈학원이 끝나고 숙제까지 마친 뒤, 하루 1시간 허락되던 어린 날의 나는
게임에 접속하는 순간이 즐거웠고 하는 내내 무척 행복했다.
1시간이 지나면 여지없이 들려오는 엄마의 무서운 목소리에 컴퓨터를 종료하고,
내일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에 대한 기대감에 가슴까지 두근거렸다.
어른이 되었고, 이젠 누가 통제하기보단 내가 스스로 완급을 조절해야 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통제 없이 쉬는 날은 열심히 어둠을 즐겼고
퇴근 후에는 역시나 미친 듯이 어둠을 즐겼다.
일이었다.
어둠에서 얻는 도파민의 크기가 점점 작아졌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게임을 하는 게 아닌 일을 하는 의무감이 들었고,
“하고 싶다”에서 “하기 싫다”로 바뀌며 조금씩 성장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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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운동, 자기계발 등
과정이 힘든 것들에는 규칙을 세우고 의미를 부여하며 계획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즐거워야 하는 것들에
규칙과 감정을 들이밀어 스스로를 옭아매는 자신은 되지 말길.
복잡한 머릿속 공상을 정리하며
다시 즐길 수 있는 나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