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 당신은 바닥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집어 들어보니 그것은 오래되어 낡은 선물상자였습니다.
당신은 낡은 선물상자를 갈무리하여 품 안에 집어넣었습니다. 』
남쪽 우드랜드 한복판에 한남자가 서있습니다.
버섯모자 위에 귀마개를 걸친 스타일이 매우 인상적인 남자였죠.
그는 손에든 낡은선물상자를 지그시 바라봤습니다.
그리곤 생각했죠.
뭐가 들었을까?
시간이 많이 지났어도 공주님의 생일선물인 만큼 꽤나 값어치 있는 물건일 것 같았습니다.
그게 뭐든 가로챌 생각은 없었지만, 이대로 투르크에게 가져가면 뭐가 들었는지 영영 알 수 없을 것만 같았어요.
모험가는 알고 싶었습니다.
당장이라도 상자를 열어보고 싶었지만 워낙 오래되고 낡아, 잘못했다간 포장끈이 끊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섣불리 열어볼 순 없었어요.
그는 한참 동안이나 청각, 후각 심지어는 미각까지 동원하고 나서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인상을 찌푸리며 먼지를 뱉어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좋은 방법을 떠올렸고, 5초 후 그는 탐색마법으로도 상자 안을 확인할 수 없단 걸 알게 되었죠.
한숨이 나왔습니다. 역시 방법은 하나뿐이네요.
그는 과감하게 손을 움직였습니다.
휘리릭! 촤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동전더미가 떨어졌어요. 어림잡아 100전 정도 되는 양입니다.
옛날 같았으면 리콜 하나 살수 있는 돈이네요.
모험가는 새삼스럽게 말도 안 되는 물가상승을 체감했습니다. 현 시대의 돈의 가치는 너무 떨어져버렸죠.
그러다 번뜩 머리 속을 스치는 생각에 온전히 손에 들린 선물상자를 동전더미에 빗대어 봤습니다.
그리곤 생각했죠.
정말 뭐가 들었을까?
모험가는 곧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자신의 채찍질에 머리통이 터진 맨티스의 끈적한 체액이 어느새 자신 쪽으로 흘러오고 있었거든요.
체액에 덮인 동전더미가 아깝진 않지만, 저 불결한 액체가 신발에 닿는 건 정말 싫었습니다.
그는 타고르마을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잠시 후, 우드랜드에 인기척이 사라졌습니다.
자연스럽게.
또 자연스럽게.
리콜은 편리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투르크를 만나려면 한참을 걸어야 했으니까요.
덕분에 모험가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궁금했거든요.
선물상자가요.
선물상자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는 걸까요?
영주는 왜 갑자기 투르크를 사면해주려는 걸까요?
얼마나 중요한 물건이길래 사면을 조건으로 걸면서까지 찾으려는 걸까요?
제법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말이죠.
마침내 모험가는 투르크 앞에 도착했습니다. 정해진 대사가 끝나고 모험가는 물었죠.
“제가 양심은 있어서 안 열어보긴 했는데, 그 상자엔 뭐가 들었나요? 좀 무겁던데”
“글쎄 젊은이. 열어보기 전엔 알 수 없겠는걸?”
“알고 계신 거 아니에요?”
“공주님께 드릴 선물을 어떻게 감히 열어보겠는가?”
“에이. 그게 무슨 판도라의상자라도 되나요? 살짝 본다고 큰일날것도 아닌데, 한번만 봐요.”
투르크는 단호했어요.
“실수는 한번으로 족하지. 난 이 선물상자를 흠집 하나 없이 폐하께 가져가고 싶어. 이건 비참했던 내 인생의 마지막 희망이거든. 도와준 건 고맙지만 미안하네.”
“판도라 맞구만.”
모험가는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이상의 요구는 실례였으니까요. 하지만 마음 한편에 남은 아쉬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어요.
그때 열어볼걸 그랬나? 그랬다면 이렇게까지 답답하진 않았을 텐데.
포장만 잘하면 들킬 일도 없잖아? 들키면 뭐, 내가 안 열어봤다고 하면 되지.
잠깐만. 어쩌면 투르크는 열어봤을지도 몰라. 치사하게 혼자만 알고 있는 거야?
그런데 왜?
“자네 괜찮은가?”
현실로 돌아온 모험가는 정신을 차리는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너무 흥분해버렸죠. 그는 차분히 감정을 되찾았습니다.
진짜 목적은 이미 달성했는데, 그는 좋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누구나 비밀은 있는 거야.
“고향이나 잘 찾아 가세요. 저는 이만 가렵니다.”
“허허, 은인을 이렇게 보내긴 아쉽지만 내 당장 가진 게 없구먼. 어디로 갈 생각인가?”
선물상자 가지고 있잖아요? 모험가는 목 끝까지 올라온 말을 꾹 참았습니다.
“비밀인데요.”
투르크는 크게 웃었습니다.
그의 손에는 낡은선물상자가 들려있었지요.
오래 전 한 기사가 있었어요.
영지에서 가장 촉망 받던 기사는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되었죠.
그건 영주로부터 공주님의 생일선물을 호송하는 임무였습니다.
출전을 앞두고 마지막 정비 중이던 기사는 의무와 본능 사이에서 갈등했습니다.
그의 손에는 생일선물상자가 들려있었지요.
마침내 결심을 굳힌 기사는, 조심스럽게 선물상자를 열었어요.
상자 안에 있던 물건은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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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