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보호>
마가레타의 집에 마가레타는 보이지 않았어요. 타고르 마을에서 수십 년 동안 뜨개질 가게를 운영하며 한번도 자리를 비운적이 없었는데, 오늘만큼은 예외였죠.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거든요.
오늘 마이소시아에 한 개뿐인 뜨개질 가게가 문을 닫았습니다.
마가레타의 집이라는 가게는 이제 마가레타의 집이 되었죠.
닫혀있던 문이 열렸어요. 오래된 문 종은 소리 내는 법을 잊어버렸습니다.
익숙하게 들어온 청년은 가게의 마지막 모습을 잊지 않으려는 듯 한참을 둘러보다가 회상에 잠겼어요.
이곳은 삶의 터전이자 보금자리.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 마가레타를 도와 뜨개질하던 그의 인생이 한 땀 한 땀 새겨진 곳.
가게이자 집이었던 이곳은 반쪽만 남아 허탈한 청년의 마음을 대변했습니다.
“빨리 끝내자.”
눈물바다가 될 것을 염려해서 청년은 마가레타를 이웃집에 데려다 주었어요. 밤이 오기 전에 정리를 끝내야 합니다.
다행히 가게가 작아서 오래 걸리진 않을 테지만, 선뜻 움직이진 못했어요.
뭐부터 해야 하지?
고민하던 그는 작은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마침 중앙 테이블에 흥건한 물기가 눈에 띄었어요.
그것은 마가레타가 가게에 남긴 마지막 흔적이었습니다.
폐업은 정해진 수순이었어요. 가게에 진열된 실처럼 손님들의 발길이 끊긴지는 너무 오래되었죠.
한 시대를 풍미했던 뜨개질의 인기는 격렬히 타오르는 불길처럼 금방 시들고 말았습니다.
세월을 이기지 못한 각광 받던 기사, 아름다운 숙녀. 뜨개질 또한 세월의 여파를 벗어날 수 없었지요. 기사나 숙녀와는 다르게 시대의 흐름에 뒤쳐져 과거의 유산으로 남겨졌으니까요.
늘 새로운걸 갈망하는 사람들의 관심사엔 뜨개질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습니다.
간혹 낭만은 쫓아 찾아오는 손님들을 제외하곤 말이죠.
진열장을 다 비우고 책장을 정리하던 청년은 문득 어느 모험가를 떠올렸습니다.
책장을 가득 메운 뜨개질입문서 사이에 눈에 띄는 11권의 책들을 발견한 게 이유였죠.
“못 본지 4년쯤 됐나?”
그 모험가는 특이했습니다. 언제나 마가레타의 집 앞에 서있었어요.
버섯모자에 귀마개를 걸친 모습으로 10년이 넘는 세월을 한결같이.
간혹 모험이 나를 부른다며 사라지고서는 짧게는 하루, 길게는 6개월 만에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청년에게 책 한 권을 선물했지요.
아이는, 소년은, 청년은.
선물 받은 책을 책장에 꽂아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읽었어요.
뜨개질을 한번 하고 나면 손가락이 아파 15분 동안 쉬어야 했기에, 책을 읽을 시간은 꽤 많았죠.
뜨개질을 처음 배우게 된 날.
뜨개질입문서에 실린 『사랑의 목도리 전설』은 청년이 뜨개질만큼이나 책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쉬는 날이면 언제나 용자의 공원을 찾아가 책을 읽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좋은 추억을 가진 책일지라도 뜨개질입문서는 금전적인 가치가 없기 때문에 모두 버려야 했습니다.
실을 것에 책장의 책을 모두 담은 청년은 그것을 집밖에 있는 환경보호 쓰레기통 앞으로 가져갔어요.
지금은 기능을 상실했지만, 한때는 쓰레기를 버리면 GP를 얻을 수 있었던 환경보호 쓰레기통.
그곳엔 용자의 공원에 갈 때마다 모은 GP를 확인하던 소년의 설렘과 그린팜팻을 키우고 싶었던 이루지 못한 꿈이 담겨있었습니다.
환경보호 쓰레기통에 뜨개질입문서를 버리면서, 청년은 무의식적으로 11권의 책들은 집지 않았어요.
뜨개질과 함께한 시간들의 아쉬움인지, 아니면 돌아오지 않는 모험가를 향한 그리움인지.
혹은 다음 편을 기대하는 마음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청년이 움직일수록 책은 점점 줄어들었고, 마침내 11권의 책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미 인지하고 있던 청년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책들 중 한 권을 집어 들었어요.
『모험가의 단편 소설 1탄 전설의 검』
루어스 마을에 사는 어느 낚시꾼의 이야기.
소설 속의 낚시꾼은 이제 더 이상 낚시를 할 수 없을 거에요. 낚시도 뜨개질과 같이 과거의 유산일 뿐이거든요.
청년은 책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두 번째 책을 집어 들었어요.
『모험가의 단편 소설 2탄 나무꾼 이야기』
포테의 숲에서 도끼를 잃어버린 나무꾼 이야기.
책을 받을 당시 소설에 나오는 도끼들은 헐값이었는데, 나중엔 금값이 되었다고 모험가에게 들었어요.
세월은 가치를 깎아 내리지만은 않습니다.
청년은 책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세 번째 책을 집어 들었어요.
『모험가의 단편 소설 3탄 킹 가고일』
킹 가고일 메핏의 이야기.
백작부인의 별장엔 온갖 이상한 인형들로 가득 차버렸습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킹 가고일은 훗날 용자의 공원 몬스터관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청년은 책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네 번째 책을 집어 들었어요.
『모험가의 단편 소설 4탄 귀향』
어머니를 만나러 간 샘의 이야기.
리턴스피릿은 오래된 유물이 되었습니다.
청년은 책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다섯 번째 책을 집어 들었어요.
『모험가의 단편 소설 5탄 뮤레칸』
뮤레칸의 방에 가게 된 죽은 자의 이야기.
여러 안전장치가 생겨서 그런지 사망 패널티에 대한 부담이 많이 사라졌어요. 뮤레칸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죠.
청년은 책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여섯 번째 책을 집어 들었어요.
『모험가의 단편 소설 6탄 선택』
직업 선택?
가본적은 없지만 노비스 마을의 직업신전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해요.
청년은 책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일곱 번째 책을 집어 들었어요.
『모험가의 단편 소설 7탄 정원』
생기를 잃어가는 정원에 찾아온 사람과 떠나는 사람의 이야기.
새로운 정원사가 생겼고, 정원은 다시 생기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청년은 책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여덟 번째 책을 집어 들었어요.
『모험가의 단편 소설 8탄 정원 그리고…』
생기를 되찾아가는 정원을 다시 찾은 사람의 이야기.
하지만 정원은 다시 선인장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부디 향긋한 꽃을 피워주길 바래요.
청년은 책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아홉 번째 책을 집어 들었어요.
『모험가의 단편 소설 9탄 팜팻과 터틀』
팜팻과 터틀의 달리기 시합 이야기.
결과가 어떻든 지금은 다시 바로잡혔습니다. 모험가는 책을 건네며 부끄럽다고 말했죠.
청년은 책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열 번째 책을 집어 들었어요.
『모험가의 단편 소설 10탄 자기소개』
**손가락과 무도가의 호소를 담은 이야기.
무도가는 더 이상 담뱃불 붙이던 직업이 아니에요. 그들의 위상은 하늘을 찌릅니다.
청년은 책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열한 번째 책을 집어 들었어요.
『모험가의 단편 소설 11탄 비밀』
투르크의 사면을 위해 노력한 이야기.
책을 읽고 곧장 투르크 아저씨를 찾아가 봤지만, 이미 마을을 떠나고 없었어요.
사면 후에는 남은 인생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청년은 책을 쓰레기통에 버리려던 손을 멈췄어요. 그는 마지막 책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이것마저 없으면 정말로 다 사라져버릴 것 같아서.
망설였어요.
소설 속 내용들은 대부분 변했거나 사라져버렸지요.
환경보호 쓰레기통은 기능을 잃고도 청년의 추억들은 하나씩 집어삼켰습니다.
낚시도, 킹 가고일도, 리턴 스피릿도.
뜨개질 가게와 그 앞을 지키던 모험가도.
결심을 굳힌 청년은 마지막 추억 조각을 쓰레기통에 버렸어요.
그때,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다 끝났어?”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버섯모자에 귀마개를 걸친 남자가 돌아본 청년에게 미소를 던졌습니다.
정말 오랜만인데. 완전히 떠난 줄 알았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모험가는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마가레타의 집 앞에 서있었어요.
“모험은 즐거웠어요?”
“물론이지. 아직 세상엔 즐거움이 가득해.”
모험가는 청년에게 책 한 권을 내밀었습니다.
책의 제목은 이러했어요.
『모험가의 단편 소설 12탄 안식』
“선물이야. 모험이 나를 부르기 전까지 좀 쉬어야겠다.”
청년은 소중한걸 다루든 책을 꼭 감싸 안았어요.
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아직 남아있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비록 과거의 유산일지라도
우리의 추억을 소중이 간직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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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