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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께 보내는 편지 셔스
모험가의 단편 소설 14탄 - 칭호배틀전
25397 2025.11.21. 21:05



<칭호배틀전>


최초의 지존
최초의 승급
최초의 결계
선구자들에게 주어진 명예로운 칭호

다크
세인트
가디언
최강자들에게 주어진 명예로운 칭호


각 분야의 일등이 거머쥔 이 칭호들은 눈부시고 찬란한 의미를 가졌지만, 반대로 빛이 바래버린 구시대의 역사이기도 하다.

영웅을 기리며 세워진 용자의 공원의 오래된 석상들은 이름조차 알아볼 수 없고,
그들의 업적은 역사서의 낡은 기록 또는 늙은 기억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세계가 살아온 시간만큼이나 많은 생명들의 발자취로 새겨진 역사는
크고 작은 사건들과 깊고 얕은 흔적들로 겹겹이 쌓여왔다.

역사는 어디에도 있고, 누구에게나 있다.
도시 출신이든. 시골 출신이든.
도심 한복판에서. 시골 변두리에서.

태생과 성별에 상관없이 무수히 많은 이들의 발자국으로 빚어진 이 땅 위에서.
역사는 쓰여왔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각자 걸어온 길은 다르지만, 첫걸음에 새긴 문구는 언제나 같다.

[세오 xxx년 xx 생]


용자의 공원에 장엄하게 서있는 다섯 석상 앞에서,
버섯모자에 귀마개를 걸친 한 모험가는 생각했다.

‘누가 짱일까?’

그는 현 시대의 영웅들을 바라봤다.
그는 새 시대의 영웅들을 그려봤다.
그리고, 이 땅의 가장 밑바닥에 서있었을 구시대의 영웅들을 기리며,
다시 한번, 눈부시고 찬란한 영광을 위해.


[ 이 자리에 모인 신사숙녀 여러분! 서버 최강의 영웅을 선발하는 칭호배틀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진행자의 외침에 관중들의 환호소리가 경기장을 작게 울렸다.
함성소리보다 퉁!퉁! 소리가 더 컸다.

세인트배, 다크배의 명백을 이어 새롭게 개최된 전 직업 최강을 선별하는 칭호배틀전에 상위 랭커 100명이 모두 참가하여 관중의 수가 너무 적었다.

대신 사람 몸통만한 완두콩이 관중석의 빈자리를 메워주었다.
주최측의 요청으로 랭킹 1위 성직자가 소환해낸 구십 구마리나 되는 완두콩이었다.

진행자는 관중석을 채워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말을 전한 뒤,
첫 번째 참가자를 소개하기 위해 경기장을 바라봤다.

마침 한 명의 전사가 중앙으로 걸어왔다. 그의 발걸음은 가볍고 여유가 넘쳤다.
손에 들린 무기는 결코 그렇지 못했지만.
터무니없이 거대한 검은 언제든지 세상을 반 토막 낼 준비가 되어있었다.

[ 이 시대 최강의 전사! 서버를 넘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전사가 입장했습니다! 만약 이 서버에도 드래곤슬레이어가 있었다면 그 주인으로 가장 어울리는 전사라고 감히 외쳐봅니다! ]

전사는 씨익! 웃었다.

“괜한 시간낭비 하지 말고 한꺼번에 덤비라고! 앙?”

그러면서 들고 있던 검을 바닥에 내리 꽂았다. 그러자 의도했던 것과 다르게, 석조로 이루어진 바닥이 폭발하며 돌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 중 꽤 큰 조각은 반대편에서 입장하는 무도가에게 날아갔다.

[ 위, 위험합니다! ]

“흥!”

진행자의 걱정이 무색하게, 무도가는 머리 쪽으로 날아온 돌덩이를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손으로 낚아챘다.
그리고 힘을 주자 단단했던 돌덩이는 힘없이 부서져 손가락 사이로 모레 알처럼 흘러내렸다.
최강의 무도가라는 위엄에 걸맞은 괴물 같은 힘이었다.

전사와 무도가는 서로를 노려봤다. 실체를 가진 듯한 눈빛이 중앙에서 충돌했다.
한치의 양보도 없는 둘의 눈싸움은 한 마법사가 등장할 때까지 계속됐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안절부절 중이던 진행자는 안도의 마음을 쓸어내며 외쳤다.

[ 오늘 참가한 마법사 중 최고의 랭커! ]
[ 메테오 한방으로 도시하나를 날려버릴 수 있는 마력의 소유자! ]
[ 가장 최강의 마법사가 입장하고 있습니다! ]

마법사는 관중을 향해 양팔을 크게 흔들었다. 그러다 두 손바닥을 맞대니 그 주변으로 작은 폭음이 터지며 불꽃 퍼포먼스를 만들어냈다. 축제에 온 것 마냥 이 분위기를 즐기는 듯 했다.

“저급한 요술쟁이 따위가 배틀장에 서있는 꼴이라니.”

마법사는 심기를 건드는 소리에 반응하며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입장한 불량스런 모습의 도적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전사와 무도가에 이어 둘 사이에 불길한 기류가 흐르자 관중석은 긴장감으로 물들었다.

퉁!퉁!
완두콩은 여전히 뛰고 있었지만.

도적은 나이프를 꽉 움켜쥐었다. 이번엔 눈싸움 정도로 끝나진 않을 것이다.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것을 감지한 마법사가 먼저 마법을 시전하자 강풍이 불며 주변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본때를 보여줄 생각이다. 거대한 마나의 흐름이 요동치며 형상을 갖춰갔다.

그때였다.
서걱!

마법사가 발생시킨 마법 이펙트를 가르며 등장한 다른 도적이 둘 사이를 막아 섰다.
그는 말 한마디 없었지만, 의도는 충분히 전달했다. 그렇기에 승부는 잠시 미뤄졌다.

곧이어 그들 뒤로 수십 명의 랭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튼튼한 갑옷이 눈에 띄는 참가자도 보였고, 상큼한 외모가 인상적인 참가자도 있었다.

마침내 모든 참가자가 경기장에 들어왔다.
그 순간만을 기다렸던 진행자는 가장 큰 목소리로 외쳤다.

[ 시작~~~~~ 하겠습니다! ]

진행자의 외침에 관중들의 환호소리가 경기장을 작게 울렸다.
함성소리보다 퉁!퉁! 소리가 더 컸다.


서버의 최강자를 가리는 칭호배틀전의 관람석에서 버섯모자에 귀마개를 걸친 한 모험가는 생각했다.

‘누가 짱일까?’

그는 현 시대의 최강자들을 바라봤다.
그는 새 시대의 도전자들을 지켜봤다.
그리고, 이 땅에 가장 마지막에 서있을 새로운 영웅을 기대하며,
눈부시고 찬란한 역사의 순간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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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