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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께 보내는 편지 세오
이번만큼은
9483 2026.01.31. 23:51

스물한 번째 디저트












'...왼발부터였나? 오른발인가..?'

길을 걷다 내 그림자를 보곤 아까 어떤 발부터 내디뎠는지, 무엇이 먼저였는지 궁금해진 밤.

오늘 아침 시끄럽게 울리던 휴대폰은 어느 쪽에 있었는지
집을 나서면서 신발을 신을 때에도 어느 발부터 밀어 넣었는지
한 번도 의식한 적 없는 행위는 사라진 다음에야 질문이 되어 돌아왔다.

길을 걷다 발걸음을 멈추고 내 귀를 쫑긋이게 한 소리, 그것이 노래인지 단어인지는 기억나지 않고
내 몸이 먼저 반응했다는 사실만 남은 채 지워져 버리는 게,
이상하게도 중요한 것보다 사소한 게 먼저 빠져나갔다.

어떤 말을 들었는지, 그 말을 들을 때의 단편적인 분위기는 기억에 남아있는데..
그날 창밖이 무슨 색이었는지
나는 어떤 자세로 의자에 앉아있었는지
내가 누구의 음료부터 내려놓았는지
또 잠들기 전에 배 위에 포갠 손은 어느 손이 위였는지
아무리 떠올려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내 기억은 늘 의미 있는 것만 골라 남기려다, 정작 대부분을 차지하는 순간들은 흘려보내는 것 같았다.
숨 쉬는 방법처럼 익숙해진 것들은 기억의 대상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 순간들이 내 하루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었다.

사실 그 어떤 것도 다시 떠올릴 만큼 중요하지는 않지만,
그래서인지 그 시간 또한 차곡차곡 쌓여 나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나를 이루고 있지만 기억에서 지워질 만큼 의식하지 않는 행위는
상대방의 눈에만 보이는 태도가 되어 관계를 결정짓기도 했다.

어떤 대답을 했느냐 보다 조금 더 전,
어느 쪽으로 몸을 기울였는지
대답하기 전 얼마나 침묵을 지켰는지.
그런 사소한 태도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 날 서로를 멀어지게 하거나 붙잡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결과는 기억나지만 그 결과로 가는 과정의 형태는 잘 떠오르지 않았다.

집으로 들어와 이상한 질문을 한다.
오늘 내가 처음으로 한 행동은 뭐였을까
침대 밑바닥에 닿은 발은 어느 쪽이었을까.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쳐버린 시간이 갑자기 무게를 갖고 나를 눌러왔다.
그 질문엔 대답이 없고 대신 조금 늦게 도착한 후회가 커피자국처럼 남아있다.

분명 나는 기억되는 장면보다 기억되지 않은 순간에 더 오래 머물러있다.
어쩌면 그 때문에 삶은 짧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일 지도 모르지.

그래서 나는 이런 이상한 질문을 붙잡는다.
'왼발부터였나? 오른발인가..?'
'손은 어디가 위였지?'
'내 귀를 쫑긋이게 한 건 노래였나 단어였나?'
당연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지만 그 질문을 하는 동안만큼은 지나간 시간 위를 조금 더 천천히 걷고 있다.

아마 이 순간도 기억나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적어도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지는 않았다고 말해야 될 것 같아서.

'...왼발부터였나? 오른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