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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께 보내는 편지 셔스
모험가의 단편 소설 15탄 - 인벤토리
1704 2026.06.15. 21:45



<인벤토리>


드디어 끝났다.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모니터를 바라봤다. 적은 시간과 노동의 결과로 얻어낸 만족감이 상당했다.
고작 인벤토리 하나 정리했을 뿐인데.
투자 대비 높은 효율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싶다.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러게.

나는 그저 소박한 사람.
인벤토리 정리에 진심인 사람.
사소한 것으로부터 행복을 찾아 여행하는 모험가.
이불킥.

깔끔하게 정렬된 아이템들은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있다.
종류별로 정리하고, 등급별로 나누고, 기간별로 또 나눈다.
순조롭게 진행중인 테트리스처럼 빈 공간이 깔끔하면 기분이 좋다.

본래 성격과 습관이 게임 속에서 그대로 드러난다고 했던가?
고개를 돌려봤다.
널브러진 방구석이 눈에 담기는걸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놈의 방구석은 정리가 필요했지만 막상 하기 귀찮아서 매번 핑계를 찾아낸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건 이미 했으니까
어제 할 일을 내일로 미뤄보기로 했다.

그러다 문득 뭐가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상자가 눈에 띄었다.
이 발견이 우연이라면 우연일지도 모르겠다. 평소엔 관심도 없었으니까.
늘 그 자리에 머물며 익숙함 뒤에 숨어있었으니까.
꽤 긴 시간을 그렇게.

내 인벤토리에도 비슷한 게 하나 있는데, 상자보다 더 오래 간직했던 아이템이다.
마을이 리뉴얼되기 전부터 썼으니 대충 20년은 넘었겠다.

이 아이템을 처음 가졌을 때 얼마나 설렜던가? 정말 기뻤다.
시간 날 때마다 꺼내 썼다.
지금이야 훨씬 성능 좋고 화려한 아이템이 차고 넘치니 인기가 없는 건 사실이지만
난 아직도 이걸 쓰고 있다.
자주 쓰진 않았지만 꾸준하게.
언제나 이 아이템을 위한 인벤토리 한 칸을 남겨놨다.

차마 버린다는 생각을 실천해 본 적은 없었다.
있으나 마나 한 그저 그런 아이템 주제에 떼어지지가 않는다.
무심결에 써보곤 금새 흥미를 잃어버리길 수없이 반복하면서
몇 번이나 버릴까 생각했지만 언제나 제자리를 맴돌았다.
너무 정이 들어버린 걸까? 이제는 익숙하다.

이 아이템을 소개한다.
아이템은 전체적으로 회색인데 주황색 점이 박혀있다.
나이가 들어서 시력이 나빠진 건지 주황색 점들이 점점 흐릿해 보일 때면 생명이 다해가는 기분이 든다.
점점 바래지고 바래져 회색만 남겨졌을 때, 그때도 이 아이템이 존재 할 수 있을까?
죽으면 특별한 물건들은 사라진다고 하던데.

고민 끝에 아이템을 버렸다. 인벤토리에 빈칸이 늘었다.
그건 곤란한데.

“아니다~”

재빨리 아이템을 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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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오: 죽으면 특별한 물건들은 사라져버립니다
모험가: 아니다~
모험가 picks up 머쉬룸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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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계속 써볼 생각이다.
오랜만에 머리에 머쉬룸캡을 썼다.
아, 모험이 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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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