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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이형환위
2021.06.27. 18:16

# 1999년 여름 어느날.


뉴스에서는 떠들석하게 '밀레니엄, 밀레니엄!'을 외치고 있었다. 그와 함께 더불어 2000년이 되면


컴퓨터가 날짜를 인식하지 못해 고장이 날 것이라는 등 갖가지 루머들과 함께 새 시대를 기대하고


맞이하는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이제 중학교 1학년. 처음으로 내가 컴퓨터라는 기계와 가까워지기 시작한 2000년의 어느날과


마주하기 얼마 남지 않은 시기였었던 것 같다.



# 드디어 2000년의 어느 겨울 날


말많고 탈많던 밀레니엄시대에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전히 세상은 잘만 흘러갔고, 사실 우리들의 관심사는


그것보다는 컴퓨터가 잘만 흘러가는 것이냐였다. 다행이도 학교가 끝나고 방과후 피씨방을 즐겨찾던 우리들은


스타크래프트가 이상없이 실행되는것에 안도감을 느끼며 그것이 온세상의 전부인양 즐거워하던 때였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친구들과 함께 4:4 팀매치를 즐기며 게임을 하다가, 애석하게도 가장 먼저 나의 진지가


모두 파괴되며 게임에서 먼저 퇴장당하게 되었던 그날. 처음이였다. 내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 한 분이 컴퓨터를


켜둔채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며, 자리를 들락날락 거리며 하고 계시던 게임에 관심을 갖게 된날.


나중에 알고보니 연습장에서 갖가지 킹오브 파이터의 캐릭터들을 때리고 있었던 어느 무도가 캐릭이 등장하는


게임이 어둠의 전설 이라는것을 알게 되었다.



# 2000년의 어느 봄날


마음속 한켠에 있던 호기심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


나는 처음으로 어둠의전설이라는 게임을 실행하게 되었고, 무도가 캐릭을 만들게 되었다.


뱀을 잡고, 벌을 넘어 사마귀도 정복하게 되었다. 한마리 한마리 잡을때마다 어찌나 흥분되던지 그게뭐라고..


하지만 나의 목표는 따로 있었다. 내가 연습장에서 봤던 무도가 캐릭이 갖고 있었던 그 장애물모양의 스킬,


'이형환위'. 이유는 따로 없었다. 무언가를 뛰어 넘어 나의 캐릭터가 번쩍하고 다른곳에서 등장하는게 나의


눈에는 더없이 멋져 보였고 이루고 싶은 목표였었다. 하지만 11레벨 까지 가는길이 그때에 나에게는, 어쩌면


그때의 우리에게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길만은 아니였던 것 같다.


학교수업이 모두 끝나야 했으며, 피씨방에 갈 용돈을 모아야 했고, 우드랜드에서 수없이 많은 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했으며, 사마귀의 거센 공격또한 뿌리치고 수없는 승리를 거머쥐어야만 도달할 수 있었던 그것.



# 2021년 어느 여름날


21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때의 이형환위를 기억하고 있는가 문뜩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쩌면 2000년의 어느 봄날 이후 이형환위 외에도 수없이 많은 무도가스킬과 아이템, 많은 경험과 추억들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이후로 처음 이형환위를 배울때의 흥분과 성취감, 만족감을 얻었었던가


생각해보았을때 당연히 대답은 아니오인 것 같다.


하나하나 더 얻어갈 수록, 하나하나 더 채워갈 수록 나의 무도가캐릭은 물론이고, 나또한 앞으로의 욕심에


더 치중해져서 정작 갖고 있었던걸 즐기지 못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때의 이형환위는 나에게 최고의 목표였고 최고의 즐거움이였었는데. 이형환위라는것 그 자체가 너무나 대단한


무언가는 아니였지만, 적어도 나는 대단하지 않은 그 작은 무언가를 즐길줄 알았던 사람이였었던 것 같다.



생떽쥐베리라는 사람의 말을 떠올려본다.


'완성이라는 것은 무언가를 더 채울수 없을때까지 채우는게 아니라,


더이상 뺄 수 없을때이다.'



그 날의 이형환위만으로, 아니 그것 또한 없을지라도 즐겁고 행복했었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어쩌면


위에 저 말처럼 더 완성에 가까운 사람이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나는 오늘, 그때의 이형환위만을 가지고 있었던 어린시절 내 모습보다는 훨씬 더 많이 가진 내모습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즐겨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