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PC방, 어둠의 전설
내가 중학생 이었을 당시, 학교 건너편에 유일하게 가장 가까운 PC방이 있었다. 그때 당시엔 우후죽순 PC방이 생겨나기 시작한 초창기였고, 주인집 건물에 1층을 개조해서 PC방 자리를 다닥 다닥 붙어 있었으며, 2층은 주인집 3층을 제2의 피씨방으로 사용했다. 돈을 한시간 1천원 선불로 받고 장부에 일일이 시작시간을 기록해서 시간이 끝나면 주인 아저씨가 "11번 자리 끝났어요~!" 하며 자리를 일어나는 굉장히 전통(?)적인 방법으로 계산이 이루어졌다.
중학교에 인접하고 PC방 붐이 일면서 인기가 많아져 하교 이후엔 PC방이 늘 만석이라 자리를 차지하기 어려웠다. 대부분은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구석 2자리 정도가 전용 자리라 어둠의 전설을 할 수 있었다. 구석에서 일부 하던 게임이 뭔지 정도 관심이 있을 때였다. 초창기 PC방 사장님은 게임을 하지 않았는데, 지루하셨는지 구석에서 자리잡아 시작한 게임이 어둠의 전설 이었고. 아이디는 그때 막 출산한 딸의 이름 이었다.
PC방엔 부지런한 친구들이 있었다. 아침 7시에 늘 PC방을 먼저 등교하여 게임을 마치고는 8시에 학교를 가는 친구들이 있었고, 다들 스타크래프트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주로 스타크래프트를 하던 도중 친구가 이거 재미있다며 같이 사냥하자! 해서 시작한 게임이 어둠의 전설 이었다.
"그거 돈내야 할 수 있는거 아니야?" 친구는 레벨 11까지는 전혀 상관없다면서 캐릭터를 만들고 직업도 없는 평민 상태에서 배경음악을 들으며 목도 하나 들고 밀레스 던전과 우드랜드를 같이 다니며 거미와 박쥐, 뱀과 벌, 사마귀를 잡기만 해도 어찌 그리 재미있고 신기했는지 모르겠다. 시간은 순식간에 1시간이 지나버리고 내일 다시 같이 하자며 자리를 아쉽게 일어 나곤 했다. 그리고 늘 전용 한자리를 독점하며 켜두시던 사장님의 전사 캐릭터는 어느덧 71레벨을 넘어 멋있는 갑옷을 입고 칼을 들고 사냥하던 모습에 나도 꼭 고렙이 될거라며 직업을 전사로 선택하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어린 나이에 전용 자리에서만 해야하는 게임의 레벨업은 굉장히 어려운일이었다... 중학생의 용돈이라봐야 얼마 되지 않았기에..
#그룹사냥
그렇게 시작한 어둠의 전설은 친구와 함께 여러 PC방 전용 자리를 찾아다니며 그룹 사냥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캐릭터를 어떻게 키울지 몰라 매번 수업 시간이나 학교 후 육성법을 이곳 저곳 사이트를 돌아다니거나 어둠의 전설 게시판을 살펴보며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당시 작은 수첩 한권에 각 캐릭 육성법을 빼곡히 작성을 해두었는데, 이사를 하며 분실을 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전사였고, 친구는 성직자여서 항상 2인 사냥을 하는 짝꿍이었다. 학교에서의 반은 달랐지만 쉬는 그 짧은 10분 시간에 오늘 우드랜드 10존 가보자, 피에트 던전도 괜찮다는데?
쉬는 시간 친구와 어둠 이야기를 하고 난 뒤 들어간 수업 시간엔 당연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끝나고 어둠을 할 생각에 어서 학교를 벗어나고 싶을 뿐 이었다.
우드랜드를 입장하기 전 푯말을 앞에 둔 대기 장소는 그룹을 구하는 사람들과 발가벗은 사람들이 많았고 고레벨의 우드랜드 존은 항상 아비규환이었던 생각이 난다. 시체들도 참 많았고.. 아벨 던전으로 가려면 항상 좁은 길목에 누군가가 길막을 해서 가질 못하거나 "택시!"를 부르면서 건너편 성직자가 로카메아를 해주기를 기다렸다. 그땐 사냥 할때 몬스터가 너무 강력해서 잔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 좁은 피에트 던전은 방을 잡았다며 시비 붙기 딱 좋았다. 몬스터가 구사하는 마법이 너무나 무서웠던 때로, 렌토가 걸리면 체력은 순식간에 줄었으며, 마레노, 테라미칼로라도 맞으면 바로 코마가 떴다. 인벤토리가 가뜩이나 부족한 때에, 코마는 하나에 한칸을 차지하는 아이템이었고, 골드도 벌기 어려운 시절이었기에 "코마땅"은 흔한일이었다. 대부분 캐릭터들이 모두 약했고 후득 페널티가 커서 좋은 아이템 가진 유저도 그리 많지 않았던 시절이니 그룹 사냥 시에 누군가가 트롤짓을 하면 떼콤 뜨는 건 시간 문제 였다. 그래서 항상 긴장하면서 사냥을 했던 기억이 난다. 떼콤은 일상 다반사, 시체라도 줍기 위해 던전 앞 엘베 앞에서 천원을 구걸했으며, 소위 119 구조대 하이드 도적님을 찾던 때였다.
#광산, 지존
"야 여기야, 여기가 지존들이 사냥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PC방이래!" 5층 빌딩 앞에 선 우리는 4층 PC방 문구를 보고 말하면서 친구가 앞장 서 계단을 올라갔다. 3층을 들어서자 우리보다 훨씬 형들이 일렬로 자리에 앉아 어두 컴컴한 화면에 외길만 있고 드래곤이 날라다니는 곳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존만 입장 가능하다는 광산을 저렙인 우리들이 볼 수 있는 기회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월드맵에는 "광산" 하나가 있었는데, 여기를 눌러 들어가면 바로 앞에 광산 입구가 딱 보이고 들어가면 "감히 접근할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만 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저 안은 도대체 어떻게 되어 있는거야? 하면서 궁금해 했었다.
PC방 입구 앞 키보드를 화려하게 두들기며 사냥하는 모습에 시선이 갔다. 성직자를 키우던 친구가 제일 먼저 뒤에 서서 구경을 했는데, 나를 보며 이것 좀 보라며 손짓을 해 가보니, 그 때 당시 가장 귀하다는 스태프 "매직루나" 와 "매직새티아"등 스태프를 갈아 끼우면서 마법을 거는 모습에 입을 벌리며 구경하고 있었다. 매직루나는 가장 예쁘면서 가장 고가의 스태프, 들고 있으면 그야말로 모두의 이목을 끄는 아이템 중의 하나였다. 심지어 그 형의 마법사 캐릭터는 맨발에 헬옷을 입었고 너무나 신비하고 멋있어 보였다.
가득찬 마법창은 전사를 키우던 나로서는 상상 할 수 없는 것 이었고, 기술을 하나 배워도 마음이 벅차오르던 때 이기에 도대체 어떤 마법들이 있는 걸까? 라며 궁금해하며 친구와 함께 마을에서 화려한 갑옷과 무기 입은 모습을 보며 동경하기만 했던 지존들을 실제로 직접 볼 수 있다니!! 하며 뒤편에 서서 사냥하는 것만 시간가는 줄 모르고 구경을 하고 있었다.
#2020년 코로나
제 이야기는 너무나 오래된 어린 시절, 약 22년전 어둠의 전설을 하던 기억을 갈무리한 것입니다. 중학교 2학년 여름까지 전사 레벨은 71을 갓 넘긴 상태에서 좋은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게임 접속을 잘 하지 않게 되었고, 친구 또한 마찬가지 였습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어둠의 전설은. 많은 사람에게 어린 시절과 함께 해온 동반자. 그리고 그리움일 것 입니다.
그 때 그 시절 속의 음악, 게임, 추억, 마음 한 구석에 깊게 자리 잡은 돌아올 수 없는 향수로 남아 있지요. 2020년 코로나가 창궐하며 재택근무 확산화와 밖으로의 외출이 제한 받고 줄어들게 되면서 우연히 유튜브에서 찾아보게된 "어둠의 전설"은 남이 플레이 하는 모습만 바라봤음에도 그때 그 순간이 오버랩되며 생각이 나고 설치를 하고 기억을 더듬어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접속했을 때는 너무나 다른 모습에 놀랐지만, 금방 적응을 하고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번쩍거리며 순식간에 움직이는 캐릭터들을 보며 어리둥절 했습니다. 내 기억속 오래전 사냥터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래도 형태는 유지하고 있었고, BGM을 들으며 기억을 꺼내어 볼 순 있었습니다 그때는 전사였지만, 가장 하고 싶었던 직업인 마법사를 선택해 키워나갔고 가득차 있던 마법창의 로망을 이뤄보고 광산도 혼자서 막층까지 올라가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보고 싶지 않고 가장 많이 보았던 "뮤레칸"을 보면서 넌 그대로 있있었구나? 하며 유령이 된 내 캐릭터의 모습과, 지금은 주변엔 아무도 없었지만 억울함을 호소하던 많은 유령들이 보이는 듯 한동안 추억에 잠겼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