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게임실행 및 홈페이지 이용을 위해 로그인 해주세요.

[칼럼]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관하여.
2004.08.16. 18:38

오늘은 처음으로 수필을 써보려고 합니다. 중국이 우리 고구려를 지네 나라라고 우기니 참 과관이 아닙니다.

거기에 항변하는 글을 하나 올리려고 합니다. 맘으로는 욕을 한껏 해주고 싶습니다만 어둠소설게시판의 이미지를 생각해서 참도록 하겠습니다.

-----------------------------작가 전기------------------------------------------------------------------

 

1.고구려는 어떠한 나라인가?

고구려는 기원전 37년에 압록강의 지류인 동가강유역의 '졸본성'에서 자리를 잡은 고조선 멸망후의 나라였다.

북쪽에는 강대한 부여가, 남쪽에는 옥저,동예,마한,진한,변한이 자리잡고 있었다. (후에 마한은 백제로,진한은 신라로,변한은 가야로 발전한다.) 고구려는 2대왕인 유리왕때에 도읍을 국내성으로 천도하고 주변의 여러나라들을 역대에 걸쳐서 정복하면서 고조선의 옛땅을 되찾는데 노력하였고 중국의 침략을 막아내 한반도의 방파제 역할을 했다.

고구려는 427년인 장수왕때에 도읍을 마지막으로 '평양성'으로 천도한뒤 우리나라 역사상의 최대규모의 대제국을 건설해 낸다. 그러나 고구려는 그 이후에 오래된전쟁으로 국력이 쇠퇴해 지고 나라의 기둥이었던 연개소문이 사망하면서 아들들이 벌인 내분으로 결국 멸망하게 668년에 멸망하여 705년의 역사를 접고 만다.

 

2.고구려사가 중국의 것이라고 말하는 중국의 속셈은?

고구려는 고조선의 제외한 우리나라의 많은 국가 가운데중에 가장 호전적인 국가였다. 남쪽의 적은영토를 제외한 북쪽의 산지는 척박하기 그지 없었기 때문에 다른나라로 쳐들어가서 그들의 식량을 뺏어 오는 약탈을 일삼는 국가였다.

(주의:약탈이라는 의미를 과장해 해석하지말라. 고구려인들은 우리나라 특유의 성품 역시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잔인한 학살등은 행한적이 없다고 전해진다.)그 때문에 중국에서도 상당히 위협적인 국가였고 고구려를 침공해서 멸망하지 않는 나라가 없었다. 위진남북조 시대의 중국은 늘 고구려의 당당한 깃발 아래에서 눈치를 보고 살았던 셈이다.

중국은 우리의 고구려라는 거대한 국가때문에 수치를 당해 온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수나라의 양제때에서도 유래가 없는 대군인 113만군대를 이끌고 쳐들어 가서 모두 섬멸을 당하지 않았던가? 그때문에 중국을 자신의 나라로 편입시키면 그들에게는 상당한 이득이다. 모두들이 알다시피 고구려의 후예는 고려,그때부터 계속 이어온 조선과 현재의 우리나라로 본다면 (그들의 주장이 맞다면)우리나라는 그들의 속국이 되는 셈이었기에 그들은 예전부터 치밀하게 고구려사 왜곡을 준비했던 것이다. 중국의 역사 왜곡이 한반도 통일 후 만주 지방을 두고 통일한국과 생길 수 있는 분쟁에 대비한 포석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92년 한국과 중국이 수교하면서 중국의 동북지방에서는 한국열풍이 불고 북한의 상황이 유동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도 중국 입장에서는 신경 쓰이는 일이다.
간도는 두만강 북쪽의 광활한 지역으로 한국인들이 다수 진출한 지역이고, 조선의 관리가 파견되기도 했다. 1909년 9월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제로 빼앗은 일제가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맺으면서 중국의 영토로 귀속됐다. 만주지역을 중국이 차지한 과정이 국제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통일한국이 간도협약을 무효라고 주장하는 것은 국제법상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중국은 고구려사 왜곡을 통해 미리 역사적 연고권을 주장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만주 지역의 조선족을 포함한 주민들 사이에는 한류열풍이 불고 있어, 통일한국과 국경을 맞댈 경우 독립 및 자치권 쟁취 운동을 벌이고 있는 티베트보다 더 골치 아픈 상황이 생길 수 있다.

3.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책은?-신문,뉴스정보

지난 달 9일 한국고대사학회가 개최한 학술회의에서는 다양한 대응논리가 소개된 바 있다. 학술회의에서 김현숙 경북대 강사는 "고구려 멸망 후 대부분의 유민들이 중국에 흡수됐기 때문에 중국 역사의 일부"라는 중국 학자들의 주장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김강사는 "고구려 멸망 후 신라로 내려간 사람보다 중국인으로 동화된 숫자가 많은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멸망을 전후한 시기에 고구려인들이 겪는 역사적 변화를 살펴보면 중국학계의 주장은 대단한 억지"라고 지적했다.
"668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평양성이 함락된 후에도 고구려 지역에는 상당수의 주요 성들이 여전히 저항하고 있었다. 이적의 보고에 의하면 669년에 이르기까지도 신성주, 요동성주, 안시성 등 11개의 성이 아직 항복하지 않았고, 또 압록수 이북의 성 7개가 도망했다고 한다. 이 해 2월에는 보장왕의 외손인 안승이 4천여 호를 이끌고 신라에 귀부하기도 했다. 보장왕이 당에 항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요동지역의 대표적인 큰 성들이 항복하지 않았고 이미 점령한 지역에서도 성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도망해 버리는 등 당의 지배를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강사는 이와 함께 "고구려인의 끈질긴 부흥운동과 당나라의 고구려인 집단 이주 정책 등으로 현실적으로 중국 사회에 적응할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하며 "고구려인들은 당나라에 속해 있으면서 고구려인의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당나라도 이들을 시종 전쟁포로로 대접했다"고 꼬집었다. 단순히 유민을 많이 흡수했다고 해서 역사 자체를 가져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그 외에도 여러가지의 대응책을 펴고있지만 아직 중국측에서는 여전히 옹고집을 부리고 있는 형편이다. 국사교과목을 필수과목으로 채택하고 중국에 대한 더욱더 강력한 대응책이 요구되는 현실이다. 여론에서는 중국의 역사왜곡이 우리나라의 책임도 크다는 지적이 많다. 그 이유는 명백히 고구려는 우리나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대책이 미흡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제부터 고구려에 대한 문제를 여,야당이 발벋고 나선다니 한번 기대해 보기로 하자.-빛의마검사의 생각

 

4.중국과의 역사전쟁에서 패한다면??

우리나라는 현재 중국의 왜곡에 대해서 강력히 항변중이다. 학계의 여러 학자들이 여러가지 지식과 근거들을 내세워서 고구려는 우리의 역사라는 사실에 대해서 여러가지 발언이 나오면서 중국의 입장도 난처해진 형편이다.

하지만 만약에 우리가 역사전쟁에서 진다면?? 생각하기도 싫지만 일단 가정은 해보자.

일단 우리나라의 고구려사가 넘어가게 된다면 우리는 뿌리가 없는 민족인 셈이다. 그동안 '단군의 후예'라고 자신있게 소리쳐왔던 우리의 뿌리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와함께 역사의 토막들도 사라져서 우리의 역사는 길어봐야 2~3천년 밖에 되지 않는것이 되고 만다. 그리고 북한과의 통일도 힘들어질거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고구려사는 우리가 반드시 되찾아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보여진다.

 

5.중국이 고구려사를 자신의 역사라고 주정하는 근거는 뭘까?-뉴스,신문 참조

고구려는 한민족(韓民族)의 조상인 예맥(濊貊)족이 세운 나라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설이다. 중국 학자들은 예맥족과 한민족의 연관성을 없애기 위해 "예맥족은 중국 소수 민족 중 하나인 '상인(商人)'의 후손"이라는 가설을 만들었다. 중국의 의도대로 예맥족이 중국 소수 민족 중 하나로 전락하게 되면 고구려 왕조 역시 독립왕조가 아닌 중원왕조와 종속관계를 갖는 중국 지방 정권 정도로 추락하게 되고, 한국사와의 연관성이 사라지게 된다.
중국 학자들은 고구려가 현재 중국의 국경 내에서 건국되었다는 점도 유난히 강조하고 있다. 중국은 다민족 국가이기 때문에, 민족 중심의 역사 기술이 아닌, 현재 중국의 영토를 중심으로 역사 기술을 해왔다. 이 때문에 셀 수 없는 소수민족의 역사가 중국 역사로 편입됐다. 같은 이유로 지금까지 한민족의 역사였던 고구려사를 새삼 중국사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중원왕조가 고구려의 세자 책봉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도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는 주요 논거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 왕들이 중원왕조에 공물을 바치고 인질을 보내 스스로 중국의 변방 정권을 자처했다"는 주장한다.
그 밖에 중국 학자들은 수·당의 고구려 원정 성격에 대해 “지역정권의 실정을 응징하기 위한 소수민족 통제과정"으로 포장하고 있고, "고구려 멸망 이후 유민들이 대부분 한족(漢族)에 흡수됐다"며 고구려사의 중국사 편입을 정당화하고 있다. 심지어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게 아니다"며 송나라 '고려전' 등 자국 역사서의 내용까지 부정하는 생떼를 쓰기도 한다.

 

6.중국의 왜곡역사에대한 약점은?

중국 학계가 고고학적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약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고구려사와 한민족사를 분리시키기 위한 중국 학자들의 연구는 대부분 고문서 분석에 의존하고 있다. 고고학적인 발굴성과를 놓고 논증하다 보면 중국의 주장이 상당 부분 허구로 드러난다.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최종택 교수는 "중국 유물과 한민족 조상이 자리를 잡았던 중국 동북부의 유물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기원전 3, 4세기경 고구려 영토에서 나타나는 적석총(돌을 쌓아 만든 무덤)은 중국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성곽을 쌓는 기술도 완전히 달랐다. 한족과 한민족의 조상은 돌을 다루는 기술 자체가 달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지만, 중국이 문제삼고 있는 시기 중 하나인 고구려 건국 초기에는 고고학적 공통점을 찾기 힘들다.
전주 우석대 조법종 교수는 지난달 9일 열린 한국고대사학회 학술회의에서 "고고학적으로 중국의 청동기문화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지석묘와 비파형동검문화 등 동북지역의 독자적 문화내용에 중국학계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고고학적 성과를 통해 중국문화와의 차별성과 독자성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 바 있다.
고려대 한국사학과 최광식 교수는 "고구려는 중국의 침입을 막기 위해 천리장성을 쌓은 바 있다"며 "고구려가 중국 내부의 소수민족의 정권이었다면 생각도 못 했을 일"이라고 꼬집었다. 고구려인들이 만주에 뿌려 놓은 수많은 유물과 유적이 고구려는 한민족의 조상임을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

7.내가 중국놈들에게 하고 싶은말

야.니네들 땅 많이 가지고 있으면 됬지 더이상 뭘 바래? 이제 역사까지 뺏어갈라고? 우리도 쓰시마섬 뺏기고(쓰시마 섬도 우리의 땅이랍니다.) 독도도 뺏길 참이라 눈에 뵈는게 없어. 조용히 니네 나라에 가서 잘먹고 잘살아라. 니네들이 만주땅 내놔야 할판에 어디서 또 뺏어갈라고 쑈야?